[강여사의 수다] 헤어스타일 

"오랜 일을 회상하다보니 혼자서 큰 웃음을 터트릴만큼 유쾌해진다"

 

글/ 엘리스 From the Wonderland

 

작년 9월 한국에 갔을때, 미용실에 가서 커트하고 염색에 트리트먼트까지 큰 맘 먹고 서비스를 받았었다. 대여섯 시간이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 하고 앉아 있어야하는 대장정의 시간 동안 눈은 잡지에 가 있었지만  많은 생각을 했다.

머리결이 많이 손상되어 있음을 알았고, 이제는 시간도 낼 수 있는데 나를 가꾸는데 너무 소홀했다는 반성과 앞으로는 조금씩이나마 시간을 투자하고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미국에 돌아가면, 한달에 한번은  관리를 받으리라 생각 했었지만, 6개월이 지난 3주전에 겨우 다시 미용실을 가게 되었다. 

너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미용사분께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 주 토요일에 있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머리를 살짝 다듬고 드라이 하러 간 거였는데, 단발로 자르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권유에, 분위기를 바꿔볼 맘도 있어서 선뜻 그렇게 따랐다. 내 머리가 반 곱슬에다가 윤기가 적은 편인데, 파마를 하면 지나치게 잘 나오는 위험함이 있어 웨이브파마는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커트를 해도 마음에 꼭 든 적이 거의 없어서 자르기 아주 힘든 머리인 걸로 막연히 알고는 있었 다. 만족스러운 변화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으니 자연히 미용실가는 일이 시큰둥해 질 수 밖에… 그래도 이 번에 자른 머리는 살짝 ‘간난이’가 생각나는 머리인데, 어찌보면 세련된 듯도 한 머리이다. 커트를 아주 잘 하셨다. 원판 불변의 법칙이라고, 사람이 문제이지 헤어스타일이 문제겠는가… 그런데, 아는 동생이 고맙게도 나의 이 새 헤어스타일을 보고 폭풍칭찬을 해 주었다. ‘언니! 훠얼씬 젊어 보인다’라면서…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그 동생의 마음이 얼마나 예쁘고 고마웠던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었다.

오랜만에 단발로 자르니 간편하기도 하고,  예전 중학생 헤어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듯도 해서 괜찮은 것 같다.

1970년생인 나는 안타깝게도 교복을 한 번도 입어볼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중학생이 되던해에 교복 자율 화가 시행되었고 고3 졸업을 앞 두었을 때는 다시 교복을 입을 거라며 후배들이 예쁜 교복을 고르기 위해 패션쇼를 하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보았다.

교복을 입을 당시 귀밑 1센티미터 단발이라는 길이를 유지하라는 규칙을 따랐는지 확인하려고 아침마다 훈육주임 선생님들이 자로 머리길이를 재는 모습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고, 고등학생의 청순함을 상징하는 양갈래로 묶은 혹은 땋은 머리도 너무 예쁘게만 보였는데 해 볼 수가 없었다. 교복세대분들에게는 획일적이고 개성이 없는 옷을 입어야하고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지켜야하는 것이 억압일 수 있었겠지만 아침마다 무슨 옷을 입어야할지 어떤 헤어스타일을 해야할지 고민할 필요없으니 공부에 집중할 수 있고 빈부차이도 가려주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 모두 같은 옷에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고 밥먹고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참 즐거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끈끈한 동질감, 연대감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헤어스타일에 관한 아픈 기억하나를 풀어보고자 한다. 대학교 3학년때였던 것 같은데 시험기간이라 도서관에서 한참 공부를 하다가  중간에 잠깐 나와 학교 가까이 있는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했던 적이 있었다.

기분전환이 필요해서였다. 처음 간 미용실이라 나에게 어울리게 잘 해 주실지 고민도 되고 불안했지만 그 무렵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탄 그룹이 우리 학교 출신이었는데 그중 메인보컬이 학교앞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고 이 미용실 단골이라며 본인이 자른 머리로 출전해서 1등한거다 자랑하시는 말에 마음을 턱 놓았다.

꽤 단정한 느낌을 주었던 단발이었던 머리는, 시험기간이라 피곤했고 잠깐 졸았다가 깨어나니 파마가 정말 너무 잘 나와서 폭탄을 맞은 듯, 원래 머리크기의 세배로 부풀어 있었다.ㅠㅠ 지금보다 수줍음과 마음약함이 세배는 강했던 나는, 미용사분께 아무 불만도 표현 못 하고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고민에 휩싸였다.

도서관에 공부하던 책이며 물건을 자리 빼앗길까 고스란히 두고 나왔는데, 가지러 들어가긴 해야겠고 아는 사람 마주칠까봐 걱정은 태산같고… 돈과 시간을 써 가며 스트레스를 푸는게 아니라 오히려 몇배로 얹는 짓을 도대체 왜 한 걸까… 사람들 눈에 안 띄게 피하려 노력했지만, 착한 동아리 후배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무슨 힘든 일이 있냐고 위로아닌 위로를 한마디씩 다 건네는 것이었다! 실연을 당했다던지 심경이 큰 변화가 있지 않고서야, 머리에 폭탄을 제대로 설치할 여학생은 흔치 않았을테니… 요즘처럼 사진으로 남기기 쉬운 때가 아니어서,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오랜 일을 회상하다보니 혼자서 큰 웃음을 터트릴만큼 유쾌해 진다. 이번에 한국나가면, 그때 동아리 후배들을 다시 볼텐데 그때의 내 폭탄머리 기억나는지 물어볼 생각이다. 크게 웃으면 건강에 좋다니, 귀한 선물하나 준비해 간다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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