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인 차세대 멘토로 나온 박선근 씨 “I’m not Korean, I’m American”

한국인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했던 차세대들 아연실색 … “어처구니 없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다. 흑인들은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고 부르고 한국을 포함한 중국계, 일본계 등 아시안들은 아시안 아메리칸 이라고 칭한다. 백인들 역시 스패니쉬 아메리칸, 아이리쉬(아이랜드계), 주이쉬(유태계), 스카디쉬(스코틀랜드계), 폴리쉬(폴란드계) 등 자신의 뿌리를 당당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지난 13일(금) 애틀란타에서 열린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총연합회 차세대들 앞에서 한미우호협회 박선근 회장의 발언 중 일부가 차세대들을 분노케했다. 본지 기자 역시 귀를 의심했다. 중요한 행사 첫날, 차세대들 앞에서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계 미국인이 아니다. 난 미국인이다”라는 발언이다.

같은 행사에 참석한 재외동포재단 김성곤 이사장은 차세대들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들은 자랑스러운 한국계 미국인입니다”라고 말했다. 전자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분노했던 차세대들은 후자에 힐링을 얻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의 발언에서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발언이 녹화된 장면을 수십번 다시 봤다. 어쩌면 소수민족에 국한되지 말고 주류사회에 진출하라는 의미였을수도 있다. 최대한 미화하고 포장해서 해석한다면 말이다. 논란의 발언은 한인들의 교육수준은 높은데 왜 미국에서 리더가 되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리더가 되지 못한 이유가 ‘코리안 아메리칸’이기 때문이라는 매우 이상한 논리가 형성된다. 미전역에는 한국계로서 지역사회에서 리더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소수민족이기에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노력했고, 여전히 노력한다.

그런데, 리더가 되겠다고 뿌리를 버리라는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답변한 그는 리더인가? 그는 자신이 주류사회의 리더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난 ‘아니다’ 쪽이다.

미주 한인사회는 어린시절 부모님을 따라 오게된 1.5세, 이곳에서 태어난 2세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다방면의 교육을 진행한다. 한국학교가 대표적이다. 모국어를 잊지 말라는 부모님들의 뜻에 따라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배운다. 올림픽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와 경기하면 미국을 응원하지만 한국과 미국이 만나면 한국을 응원한다.

한 차세대는 기성세대들 앞에서 “최근 한국문화가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며 한국인이라고 하면 다들 관심을 갖는다”면서 한국인의 핏줄을 가진 자신과 한국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박선근 씨의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미국에서 태어나 변호사로 당당히 살아가면서도 한국말을 잊지 않은 또 다른 차세대 역시 분노했다.

스스로가 한국인임을 부정하는 이가 멘토로 나와 할 말을 잃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을 잊지 않고 한국말도 유창한 한인 2세들 앞에서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미국인이다” 라고 외치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 한인 상공회장들의 총회와 워크숍이었다. 발언이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그가 뼛속까지 친미파 일지라도 한인들 행사에, 그것도 한인차세대 앞에서 할 말은 아니다. 한인행사가 아닌 주류사회에서 해당 발언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뿌리를 부정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인 못지 않게 자신의 뿌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민자들이기 때문이다.

기자로 사용하는 이름은 내 한국이름 안미향이다. 하지만 나는 법적으로는 미국이름이다. 미들네임에 한국이름을 넣었다. 두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영어이름이지만 미들네임은 한국이름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미국에서 미국인 남편을 만났다. 오리지널 백인 미국인인 남편도 자신의 뿌리는 영국계와 독일계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독일계 성을 가진 그는 ‘진실된 입’ 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 성을 자랑스러워한다.

박선근 씨가 한국을 부정하는 것은 그의 태생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가 스스로 한국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차세대들에게 그의 발언은 ‘망언’이다.

돈이 많다고, 사업에 성공했다고 차세대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박선근 씨는 그의 언어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이건 그는 한인 차세대들의 정체성에 큰 상처를 남겼다. 현장에 있던 차세대들을 분노케 했다.

그가 말하는 성공의 의미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도 나는 모르며 관심도 없다.

주머니에 1,000달러도 안되는 돈만 가진 채 미국에 와 성공한 한인 1세대 사업가가 미 전역에서 한 두명이 아니다. 정치인 기부에만 몰입하는 것이 아닌 한인차세대를 위한 장학기부를 수십년째 하는 진짜 훌륭한 선배도 있다.  그런 이들이 진정한 차세대 멘토다.

 

안미향 기자

텍사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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