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확증편향은 불편하다

민주평통 행사에서 나온 "재외동포사회 극단의 이념갈등은 북한을 추종하는 좌파때문" 발언

 

지난 18일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과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대공혐의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공안정국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관측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압수수색은 사무실과 자택, 차량과 휴대전화를 비롯해 신체 등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국정원은 “민주노총 간부들이 캄보디아와 베트남 등에서 북한 공작원과 회합했다는 증거가 있다”면서 “북한 공작기관과 연계한 지하조직을 구축해 임무를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간첩활동에 무게를 뒀다.

그리고 한국의 언론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레이트의 적은 이란”이라는 문제발언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대한민국에 간첩단이 활보한다는 정확한 물증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사실은 마구잡이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언론은 취재보다는 받아적기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언론의 받아적기, 일부 언론의 국정원과 한몸으로 움직이기는 “국정원이 압수수색을 한 것은 그들이 간첩이기 때문이다”라는 ‘무죄추정의 원칙’도 무시하는  ‘여론몰이’를 하려는 듯 하다. 그리고 이같은 발언은 휴스턴의 한인행사에서도 나왔다.

민주평통 신년하례식에서 등장한 ‘간첩단’에 대한 확언과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좌파세력”

민주노총 압수수색은 간첩활동 혐의에 대한 수사의 과정이다.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간첩단 진실에 대한 수사는 이제 시작했다. 그럼에도 전임 협의회장은 “대남적화야욕은 진행형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이 간첩이었다. 민주노총 핵심 조직원이 간첩이다”고 단정한다. 극우단체의 모임인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자문위원들로 구성된 민주평통 모임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강경 발언이다.

발언의 시작은 한국의 이념갈등으로 인한 극단적 분열에 대한 우려였다. “미주동포사회에서도 정치적, 이념적 성향이 다르면 같이 만나지도 않는다”며 “극단적 이념갈등이 한국과 해외에도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다음 발언은 ‘갈등보다 화합으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자’라는 것으로 이어짐이 자연스럽다. 민주평통 협의회장 출신다운 연결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극단적 이념갈등의 배후세력은 북한이며 북한에 동조하고 추종하는 좌파세력, 종북주사파의 선전선동 때문”이라며 좌파에게 간첩 프레임을 씌운다. 그는 “좌파는 곧 간첩”라고 확언한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좌파를 척결해야 한다”는 극우단체의 발언과 매우 닮았다. 전임 협의회장은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좌파세력”이라며 “간첩단 사건으로 증명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공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현재 수사중인 내용에 대해 확증편향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실여부를 떠나 자신이 믿고 확신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한다. “대한민국의 갈등이 북한 때문이며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간첩들, 이들의 배후는 좌파”라는 확증편향과 이분법적 논리.

간첩단 사건은 수사 중이다. 실제로 북한과 접촉을 했는지 여부는 수사결과가 나오면 알게 될 것이다.  과거처럼 만들어지는 간첩이 나올 지, 북한과 접촉이 사실일지는 국정원 수사결과로 알게 될 일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간첩사건은 수도 없이 많다. 남영동에 끌려가 물고문을 당하고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민주투사들은 모두 빨갱이가 됐다. 과거 운동권 학생들도 모두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빨갱이 집단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친 이들을 탄압하기 위한 최고의 무기는 ‘레드 컴플렉스’ 밖에 없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김씨일가의 독재를 비판하면서도 대한민국에서 자행된 독재에 항거하면 ‘빨갱이’가 됐던 과거는 아픈 역사다. 이같은 아픔을 정리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수십년간 이어졌다.

국정원이 과거 독재정권 당시 안기부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사에 공정과 철저를 기할 것을 기대한다. 윤석열 정부가 줄곧 강조해오듯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간첩혐의에 대한 유무가 가려질 것이기에 이제 막 수사에 들어간 사건에 대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인 간첩의 배후는 좌파’, “국회의원 보좌관이 간첩이다” 발언은 매우 부적절했다. 그것도 민주평통 전임 협의회장 입에서.

상가집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지 않고 결혼식장에서 상복을 입지 않듯이 자리에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한다. 또한 자리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은 당연한 기대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당시 어용으로 시작됐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정권입맛대로가 아닌 보편타당하며 지속가능한 대북정책, 통일정책을 자문하는 단체로 자리잡아간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모임에 다시 등장한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좌파세력’라는 진보와 보수 진영을 ‘갈라치기’ 하는 발언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원하는 재외동포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안미향 텍사스N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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