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남의 수요칼럼] 모천(母川)-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나의 이야기

“ 고향에서 너무도 멀리 떠나온 지금, 모천(母川)의 사무침에 빠져 옷소매를 적신다”

 

거리감 없이 이동(移動)의 자유를 만끽(滿喫)하며 살아가는 우리다. 그래서 지구 곳곳은 이웃마을이 되었고 지구촌(地球村)이란 말이 실감난 지 오래다. 고향을 떠나 사는 것에 거의 이력(履歷)이 난 세대가 되었다. 기차 타고 도시 구경하듯, 마을 버스 타고 이웃나들이 하듯 이동이 한결 수월해 진 작금(昨今)이다. 철철이 타지로 떼 지어 관광하는 재미 말고도 아예 경험삼아 잠시 잠깐 타지에 눌러 사는 경향도 생겨나는 세대다.

박영남 달라스 한인상공회 상임고문

그것도 나라안 에서가 아닌 지구 곳곳, 5대양 6대주로 옮겨 다니니 말이다. 더구나 이 세대는 결혼을 미루면서까지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 특별 행사가 아닌 일상이 된 이도 생겨 낫다니 말이다. 흥미 있고 신기한 것, 철철이 바뀌는 타지의 경관 (景觀)등 놓치기 싫은 장면을 추억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차고도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알에서 깨어나자 마자 대양(大洋)을 쫓아 훨훨 날개 짓 하며 사는 바다의 연어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게 일생을 놓고 보면 그렇지 마는 않은가 보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살아온 연어를 보면 말년엔 태어난 고향을 찾아 내는DNA가 물고기 연어의 뇌리에 각인(刻印)되어 있다는 것이, 지극히 동물적인 본능(本能)이란 말이다. 내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에 “동물의 왕국” 이 있는데 원초적인 동물의 모습에서 신기할 정도로 인간이란 동물도 별 수 없이 야생의 동물이라는 울타리의 틀에 딱 들어 맞는 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스스로 경탄(驚歎)할 때가 많다.

들판에서, 고공에서, 산야에서, 물 밑에서, 지구를 누비고 살아가는 인간 외의 여타 동물은 먹이 사슬의 굴레에서 쫓고 쪽 기는 숨바꼭질로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가 하면, 생리적으로 우생(優生)의 원리에 따라 생존과 번식하는 천연적 기술이라 할 오랜 관습에 익숙해 있는 모습을 본다. 척추 동물이나, 무척추 동물이나,날 짐승이나, 지금은 사라진 옛날 짐승이나, 새로 발견되는 종(種)이나, 곤충이 나를 막론하고 말이다. 어쩌면 살아있는 모든 것의 한결같은 자연 법칙의 틀안에서 생을 영위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나름 나는 80 인생을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나도 역마살이 낀 듯 여기 저기 꽤나 옮겨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기사외무부 직원이나 코트라 직원에 견줄 만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평균은 넘지 않았나 싶다. 반도의 북쪽 끝자락인 함경도에서 태어나 해방 다음해에 월남, 경상도에 살다가 서울에서 6.25를 맞나 거의 괴멸 직전에서 구사일생 하곤 다시 미국에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50년을 넘겨 여기 살았다.

고향 땅을 밟아본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표현이 정곡(正鵠)이 될 듯싶지만 아! 고향 땅이 눈물 겹도록 그립다. 허리 잘린 한반도의 남 북은 서로에겐 금단(禁斷)의 땅이 되었고 그래서 더더욱 그리운가 보다. 절기(節氣)가 되고 해가 바뀌고 하면 그 열병 같은 심통(心痛)이 도져 나고 또다시 도져 나곤 한다.

동해의 물고기, 갈라진 철책을 오가는 짐승들, 허공을 날개 짓 하며 분단의 계곡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새들이 이 때처럼 부러울 데가 없다. 짐승도 죽을 때는 태어난 쪽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데, 물고기도 태어난 곳 모천(母川)을 찾아 거슬러 오르며 마지막 사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인간인 우리 에게도 동물적 본능이 고스란히 작동한다는 사실에 소름 끼치도록 경악(驚愕)하게 된다.

솔직히 나는 이 지음 남(南) 북(北) 미(美) 중(中) 한반도 정책 당국자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예리한 촉각을 곤 두 세우지 않을 수 없으며 들려오는 뉴스 꼭지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동물 본래의 인간이 되어간다는 생각마저 든다. 고향을 그리워할 사이조차도 없이 바빴던 지난 날엔 어찌 지내왔던가 싶어 진다. “고향이 그리워도~~” 하는 가락이 새삼 귓전을 울리며 나로 향수(鄕愁)에 잠기게 한다.

그저 생을 마감하기 전에 남북통일이나 되었으면, 북녘 고향의 언저리라도 밟아 봤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시려 오도록 가슴을 때린다. 미물도 모천(母川)의 내음을 못 잊는 생래적(生來的)인 끌림에 어쩔 수 없이 대해(大海)에서 자갈밭 굴곡진 험로를 거슬러 오르며 생명을 마감하는 장엄한 여정을 마다 않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왜 이리도 찌질이 못난이가 되는 건지 안타깝게만 여겨진다.

고향에서 너무도 멀리 떠나온 지금, 모천(母川)의 사무침에 빠져 옷소매를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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