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남 칼럼]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경계해야 할 미일 간의 밀착

"일본의 징용보상문제를 제3자 변제 배상방식 처리는 친일행각으로 보이며 소탐대실, 굴욕외교다"

 

 

1905년 7월 29일 당시 미국 육군장관인 윌리암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와 일본제국 내각총리대신인 가쓰라 다로(Katsura Daro)간의 대화기록(Memorandum)에 따르면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과 일본제국의 대한제국 지배권을 상호 맞교환한 것이다. 이 기록은 1924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같은 해 11월17일 일본은 대한제국에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을 강요했고 미국은 이를 묵인했다. 대화록 후 8월에는 영일동맹(英日同盟)이 , 9월에는 포츠머스(Portsmouth, New Hampshire) 조약(Treaty)이 일본의 한반도 지배권은 국제적으로 공인(公認)했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자고로 부정적인데 이는 근세 일본이 한국 강점 당시 극악했던 탄압(彈壓)과 해악(害惡)들이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한 국민적 악감정으로 각인(刻印)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역사를 거슬려 올라가 임진 정유 왜란(壬辰 丁酉 倭亂, 1952~1959) 때 일본은 조선8도를 난도질하듯 작살내며 분탕질한 피해가 너무 참혹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국력은 인구에서나 면적에서나 서구 문명 수용에서 한국을 앞섰기 때문으로 한일간의 경쟁은 다른 어느 것 보다 치열하니 그것이 운동이든 학문이 든, 예술이 든 경쟁하면 국민 감정과 맞닿았고 사생결단이 되었다.

박영남 달라스한인상공회의소 상임고문

근자 윤 석열 정부는 한일관계 복원 명목과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서 100여년전의 외교적 패착(敗着)을 자초하고 있다. 스스로 구한말 나라가 힘을 잃고 맥없이 해체(解體)되는 과정을 한탄하지만 같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현 정부는 외교력의 한계에 봉착하며 구한말의 참담한 전철(前轍)을 밟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소위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 운명을 요리하던 미국과
일본의 모습은 작금에도 재연(再演)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곤혹스럽다. 그땐 모르고 당했다면 지금은 알면서 당한다고 나 할가. 쿼드(Quad, 미국, 일본, 인도, 호주간의 안보 협의체)로 대변되는 대중국 포위작전이 한국을 옥조이고 있다.

지금은 자유 민주주의와 독재적 사회주의 체제가 전방위적으로 첨예하게 맞서며, 서로 다른 두 가치관(價値觀)은 마주보고 달리는 화물차 같은 형국이다. 한국은 만방(萬邦)과 선린 교역(善隣 交易) 해야 하는 대외 의존도(對外 依存度) 높은 무역국(貿易國)으로 성장 발전해 왔다. 두 세력이 불력(Block)화로 치 닫는 작금의 지구촌 정세에서 거리낌없는 자유로운 개방만이 살길이라는 한국의 입장은 양대 세력에 끼인 샌드위치(Sandwich) 형국이 되니 출구(出口) 찾기가 점점 어렵다. 국익의 상충(國益 相衝)으로 우리의 행로(行路)는 날로 어려워진다.

구한말 매국노인 학부대신 이완용 등 오적(五賊)은1905년 11월17일 덕수궁 증명전에서 소위 을사늑약(乙巳勒約,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에 찬성표를 던져 대한제국을 일본에 바쳤지만 이들의 변명은 역시 구국의 결단이 었으리라. 당시 극동의 정세로 보아 대한제국의 살 길은 이 길 밖에 없다는 논리였을 것이다. 이 점 오늘 윤석열 정부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 지 묻고 싶다. 북핵과 미. 일의 회유(懷柔), 설득 논리에 휘말린 사태 발전은 우리 정부의 운신(運身)을 당혹스럽게 하는것도 사실이다.

지상(地上) 유일의 패권국(覇權國)인 미국은 유럽에서는 유럽연합, 중동지역에서는 이스라엘, 극동에서는 일본을 가장 신뢰하는 우방(友邦)으로 점지한 듯하다. 미국을 정점으로 국제질서가 짜여 졌다는 사실과 한국은 다시 변방의 졸(卒)이 되어 미국과 일본의 국익에 기여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패권국의 지위를 보강하며, 일본은 미국과 함께 정치적, 경제적 실속을 챙기는 모양새다.
역사의 되풀이를 목도(目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익은 나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징용보상문제를 제3자변제 배상방식으로 처리하며 한미일 결속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력은 한낱 어처구니없는 친일행각(親日行脚)으로 보이며 소탐대실(小貪大失), 굴욕외교(屈辱外交)로 보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으로서는 반색할 일이겠지만 우리에겐 같이 웃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 약소국(弱小國)임을 만천하에 천명(闡明)한 셈이시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도 무용지물(無用之物)로 하찮게 만든 이번 정부 처사는 나라의 존엄을 스스로 훼손(毁損)한, 헌법을 한낱 휴지조각으로 전락(轉落)시킨 막장 드라마의 극치다. 사실 국가사죄는 가해국과 피해국 모두의 올바른 관계정립(正立)을 위한 초석이며, 신뢰회복의 첫 단추다. 국론 수렴(國論收斂)을
거치지 않은 이번 처사로 나라는 앞으로 극도의 분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전임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아무도 쉽게 흔들 수 없는 나라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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