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남 칼럼] 메시지(Message) 공유(共有)하기

"익명성 뒤에 숨어 재미삼아 혹은 의도된 음습한 거짓정보를 유포하는 행위 경계해야"

 

 

박영남 달라스 한인상공회 상임고문

필자가 자라나던 학창(學窓) 시절에는 도시(都是) 상상이 안되던 일 중의 하나가 오늘날 모두가 들고 다니며 편리하게 쓰고 있는 손전화기(Hand phone)의 등장이 아닐까 싶다. 이거 하나면 육성(肉聲)으로의 대화(對話)는 물론 사회관계망(社會關係網,Social Net Service)까지 가능한 가히 시대의 총아(寵兒)라 불러도 손색(遜色)이 없을 듯하다. 전화기 하나면 사무실이 완성(完成)된다고 여기던 꿈의 시절이 완성되는 천지개벽(天地開闢)하는 새날이 도래한 셈이다.

도시미관(都市美觀)의 하나로 대접받던 노변(路邊)의 예쁜 빨강색 공중전화기(公衆電話器)와 우편함(郵便函)은 이 손전화기의 등장으로 구시대(舊時代)의 퇴물(退物)이 되고 말았다. 하 기사 이 전화기는 음성(音聲)전달 기능을 넘어 전산(電算) 컴퓨터에 메모(Memo)지 사진기(寫眞機) 역할까지 톡톡히 해 내는 요술(妖術)방망이가 되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일반 대중은 이 기기(器機)안에 탑재(搭載) 많은 기능(機能)의 극히 일부분만 이용하는 셈이라니 입이 딱 벌어진다.

말과 글이 같은 시간대(Real time)에 전하고 싶은 상대에게 도달(到達)하는 일은 이젠 너무나 당연(當然)한 일상(日常)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전달받은 글이 나의 생각과 같다면 제3자에게도 재송부(再送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소위 퍼 나르기(sharing)다. 상품(商品)의 사용 후기로, 여론(與論)형성의 도구(道具)로, 선거 전략(選擧戰略)으로, 호소문(呼訴文)으로 쓰이는 등 다양한 용도를 자랑하는 “퍼 나르기”는 모두에게 너무 익숙해졌다. 받은 글을 간편하게 찬성(贊成) 공감(共感)을 담아 공유(共有) 하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타인(他人)의 글을 공유함은 나도 그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同意) 찬성(贊成) 보증(保證)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사회관계망은 그렇듯 여럿의 생각을 묶어내는 순(純) 기능도 있지만 때로는 역(逆) 기능도 있다. 같은 생각을 한곳에 결집하는 일은 결국엔 갈라치기의 사회적 역기능도 생기게 하며 사회적 파장(波長)도 만든다. 사회 구성원이 다양하니 당연히 사회적 반응(反應) 또한 다양하며 이는 건전하고 사려 깊은 방향을 찾아서 발전의 계기를 만드는 소위 집단적 지성을 찾는 의미 있는 과정(過程)을
만들 것이다. 토론(討論)의 장을 마련하는 일은 민주사회의 바탕을 튼실하게 하는 길이며 인권의 확장이며 우리사회의 장점을 살리는 일이다.

여기에도 승강장(乘降場, Platform) 이론(理論)이 맞을 것 같다. 사통팔달(四通八達)하는 소통(疏通)의 길목이 되어주는 셈이니 말이다. 다만 방해꾼의 등장을 경계하는 것이 시민 모두의 파수꾼(把守軍) 역할일 것이다. 사생활(私生活)이 철저히 보장되고 염탐꾼(廉探軍)이 근접할 수 없는 환경이 중요하다. 그야말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들 끓고, 염탐꾼과 가로채(hacking)기도 없어야 할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치고 빠지기(hit and run), 카드 라가, 아니면 말 구가 횡행(橫行)하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社會的費用)만 크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사이코패스(Psyco-Pass)들의 악성(惡性)댓글을 어떻게 가려 내느냐 도 큰 문제다. 인터넷(Internet) 환경오염(環境汚染)으로 대중이 이용을 기피할 가 두려워진다. 댓글 때문에 괴로워하다 자살하는 경우도 생긴다. 무심한 돌 더지기로
선량한(Innocent) 개구리가 맞아 희생(犧牲)되는 것이다. 익명성(匿名性) 뒤에 숨어 재미삼아 혹은 의도(意圖)된 음습(陰濕)한 거짓정보를 유포(流布)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 깨어지기 쉬운 유리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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