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된 지 40년여만에 시민권 받은 한인입양인 … “가족 찾고 싶다”

휴스턴 거주 케시 컬터 씨 ... "입양후 친부와 한번 통화, 울면서 미안하다던 아버지 보고싶다"

 

사진/ 한인입양인 케시 컬터 씨가 아버지가 보내준 가족 사진을 설명하며 눈물을 흘렸다.

 

입양된지 40여년만에 시민권을 받은 케시 컬터씨. 생후 18개월에 미군과 한국여성 가정에 입양된 이후 파양됐다. 그리고 또다시 미국인과 한국인 여성이 결혼한 가정에 입양된 이후 줄곧 미국시민인 줄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 미국 시민이 아니라는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주휴스턴총영사관의 도움을 받아 3년간의 긴 서류과정 끝에 시민권 시험을 봤고 최종 선서까지 거치며 합법적 미국 시민이 됐다.

미국 시민권을 받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의 입양기관을 통한 입양이 아닌 개인입양인 탓에 관련서류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국아동권리보장원에 연락도 취해봤지만 개인입양이라서 친부모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을 들게 됐다. 결국 컬터 씨는 미국 이민국에 입양시기 관련서류 열람을 신청하고 무국적자가 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주휴스턴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관련 정보를 찾는 등 비용을 포함한 모든 과정은 오롯히 컬터씨의 몫이었다.

한국에서 입양되어 왔고 어린시절 미국에 합법적으로 입양됐지만 무국적이 된 상황에 패닉에 빠지기도 했지만 미국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시민권을 획득해야 했고 3년의 노력끝에 시민권을 받았다.

그녀가 시민권을 받은 후 가장 처음 한 일은 가족찾기였다. 생부의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아버지는 양어머니에게 가족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뒷면에는 할머니와 큰삼촌, 작은 삼촌의 아이들이라는 친필 설명이 있었고, 아버지 증명사진 뒷면에는 ‘아빠의 최근 모습’이라고 적혀있다.

컬터 씨는 “내게 자신을 잊지 말라는 당부였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이름도 알지 못하는 아버지이지만 찾기만 한다면 자신을 반겨줄 것이라고 믿고 여권을 발급받자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셧다운 됐다. 동사무소를 포함한 관공서를 찾아갔지만  허사였다. 그렇게 자신의 흔적을 찾기 위한 과정은 펜데믹 셧다운에 발목이 잡혔다.

그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한국 언론도 두차례나 그녀의 가족 찾기 사연을 보도했지만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가족을 찾고 싶어한다.

컬터 씨는  “양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울면서 미안하다고 보고싶다고 말했다”며 울먹였다. 그녀는 “양어머니는 내게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고 돌아가셨다”면서 “남아있는건 서류 몇개와 아버지가  보내준 사진이 전부다. 할머니와 사촌들, 삼촌들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부터 돌 사진, 아버지가 나를 안고 있는 사진 등을 보내주셨다. 아버지는 내게 자신을 기억하라고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걸음마를 떼자마자 입양됐고 4살무렵에 파양, 다시 재입양 과정을 고사리손으로 겪어야 했던 케시 컬터 씨. 그녀에게 미래는 희망이다.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2000년 아동시민권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민권 없는 한인입양인 2만여명

미국으로 입양된 한인중에 아직도 시민권을 받지 못한 사람이 약 2만여명에 달한다. 이들 모두 미국시민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가 성인이 되면서 시민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양부모들은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에게 시민권 자동 부여를 위한 청원을 시작했고 2000년 아동시민권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해당법안이 통과될 당시 만 18세미만에게만 해당되면서 1983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해당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40대애서 50대 한인입양인들 중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은 법안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

휴스턴 한인시민단체 우리훈또스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해 베트남, 중국 등 여러 국가에서 미국으로 입양됐고 이중 시민권이 없는 입양인을 약 4만여명으로 추산한다. 그리고 이중 절반이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들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고아들이나 버려진 아이들을 미국으로 입양했다. 당시 입양하는 아이당 상당한 금액의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아이들을 팔아 외화벌이를 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리고 입양된 아이들에 대한 사후처리는 무관심으로 일관됐고 오늘날 2만여명에 달하는 한인입양인들은 시민권이 없는 상태로 방치됐다.

휴스턴의 신지호 변호사는 “시민권이 없는 한인입양인들은 합법적 체류상태가 아닌 경우가 많아 미국에서 평생을 살면서도 운전면허증 조차도 발급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며 “법적인 제도마련 외에는 이들에 대한 구제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tional Korean American Service and Education Consortium, 이하 미교협)는 오랜시간 시민권 없는 한인입양인 문제에 대해 다루며 법률개정을 요구해왔다. 시민권자 부모에게 입양된 아이가 미국 시민이 아니라는 부조리를 막고 추방된 한인입양인들이 다시 가족들과 만날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연령의 입양인들에게 시민권을 주자는 아동시민권법 확대를 주장한다.

연방하원과 상원에서 지난회기에 관련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결국 법안은 폐기됐다. 미교협과 우리훈또스는 올해 다시한번 연방 상하원이 해당 사안에 대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연방의원 설득에 나서고 있다.

우리훈또스의 신현자 대표는 “많은 한인들이 한인입양인들이 처한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더욱 더 알려 법적 제도마련이 하루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미향 기자 amiangs02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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