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미네소타 대학교 연구소 홈페이지
미국 내에서 흡혈 곤충 ‘키싱버그(kissing bug)’가 옮기는 기생충성 질환 차가스병(Chagas disease) 이 이제 ‘토착화(endemic)’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왔다. 질환에 대한 인식과 공중보건 차원의 대응이 미흡할 경우, 불필요한 피해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학술지 신종감염병(Emerging Infectious Diseases) 에 실린 보고서는 미국 내 차가스 환자가 약 28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대부분 환자가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으며, 의료진 역시 진단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조기 치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차가스병은 트리파노소마 크루지(Trypanosoma cruzi) 라는 기생충이 원인으로, 감염된 키싱버그가 사람을 물 때 배설물이 상처나 점막을 통해 체내로 들어오면서 전파된다. 초기에는 발열, 몸살, 두통, 피부 발진, 구토, 피로감 등이 나타나지만, 20~30%는 수년 후 심부전, 소화기 질환, 뇌졸중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까지 32개 주에서 키싱버그가 발견됐으며, 특히 텍사스·루이지애나·아칸소 등 남부 지역에서 사람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기후 변화로 곤충 서식 범위가 확대되면서 감염 위험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야생동물과 반려동물에서도 감염이 확인돼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차가스병은 조기에 발견하면 항기생충제인 벤즈니다졸이나 니푸르티목스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미국에서는 2007년부터 혈액 기증 시 차가스 검사를 시행하고 있으나 그 외 공식적 감시 체계는 미비하다.
전문가들은 차가스병을 미국의 ‘토착 질환’으로 인정하고 모기 방역처럼 국가 차원의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로리다대학 노먼 비티 교수는 “미국에는 모기 방역은 있지만 키싱버그에 대한 대응은 전혀 없다”며 “공공 보건 차원의 적극적인 감시와 예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미향 기자 amiangs02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