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부진에 빠진 경쟁사 인텔에 50억 달러(약 6조 8천억 원)를 투자하고 협력 관계를 맺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미국 정부가 지난달 인텔 지분 10%를 인수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나온 것이다.
엔비디아는 18일(목) 보도자료를 통해 주당 23.28달러에 인텔 보통주를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기자회견에서 “컴퓨팅의 본질적 변화에 대한 인정”이라며 “가속화 및 인공지능 컴퓨팅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황은 또 “두 세계적 플랫폼의 융합”이라며, 인텔의 CPU(중앙처리장치) 제작 역량과 엔비디아의 AI 중심 GPU(그래픽처리장치) 기술이 결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력의 주요 내용은 ▲데이터센터용 AI 인프라 플랫폼을 위한 맞춤형 칩 제작 ▲개인용 PC 제품에서 엔비디아 기술을 탑재한 인텔 칩 생산 등이다.
소식 직후 인텔 주가는 23% 가까이 폭등하며 1987년 이후 최대 일일 상승폭을 기록했다. 엔비디아 주가도 3% 넘게 올랐다.
인텔은 PC 전성기에는 실리콘밸리의 개척자로 군림했지만 스마트폰 혁명과 최근의 AI 붐에서 뒤처지며 지난해에만 19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37억 달러 적자를 냈으며, 내년 말까지 전체 인력의 4분의 1을 감축할 계획이다.
리프-부 탄 인텔 CEO는 “이번 협력은 게임 체인저급 기회”라며 “엔비디아와의 대화는 취임 직후부터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이미 인텔에 10% 지분(43억3천만 주)을 확보하며 최대 주주 중 하나가 됐다.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 기술력과 제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투자은행 웨드부시 시큐리티즈의 애널리스트 다니엘 아이브스는 이번 거래를 두고 “인텔을 AI 게임의 중심에 세운 결정”이라며 “지난 수년간 고통받아온 인텔 투자자들에게 황금 같은 몇 주”라고 평가했다.
이번 협력은 중국이 미국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 속에서 나왔다. 중국 당국은 일부 기업에 엔비디아 칩 구매를 금지했으며, 화웨이는 자체 AI 칩 개발·생산 확대를 선언했다.
두 회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향후 공동 칩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다만, 엔비디아의 주력 칩을 생산 중인 TSMC(대만 반도체 제조기업)와의 제조 계약에 변화가 생길지는 미지수다.
젠슨 황 CEO는 “인텔과 엔비디아 모두 여전히 TSMC의 중요한 고객”이라며 당분간 변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안미향 기자 amiangs02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