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Participants recite the Oath of Allegiance during a naturalization ceremony for new U.S. citizens in Seattle on July 4, 2025. Under the Trump administration, new applicants for naturalization will have to take a more difficult civics test that the government says is intended to ensure that only immigrants who are “fully assimilated” will become new citizens. (Photo by David Ryder/Getty Images) David Ryder/Getty Images
- 문항 100개→128개…역사·정치 중심의 고난도 문제로 대체
- ‘도덕성 입증’ 새 기준…“주관적 해석 우려”
- “미국이 걸프전에 참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시민권 취득을 위한 귀화시험을 대폭 강화하면서, 시험 문항 수와 난이도가 모두 높아지고 ‘도덕성’ 평가 항목까지 추가됐다.
미국 이민국(USCIS)은 10월 20일 이후 시민권을 신청하는 영주권자부터 새 시험 규정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새 시험은 기존보다 두 배 긴 형태로 20문항 중 12문항 이상을 정답으로 맞혀야 통과할 수 있다. 기존에는 10문항 중 6문항만 맞히면 합격이었다. 이번 개편으로 시험 문제는 기존 100개에서 128개로 늘었으며, 단순한 지리·기초 상식 문항은 줄고 정치·외교적 배경을 묻는 문제들이 새로 추가됐다.
예를 들어 기존 시험에는 “미국 서해안에 있는 바다는 무엇인가?” 같은 문항이 포함됐으나, 새 시험에는 “미국이 걸프전에 참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등 역사적 맥락을 요구하는 문제가 포함됐다. USCIS 대변인 매튜 트래저서는 성명에서 “새 시험은 미국의 가치와 헌법 원칙을 더 충실히 반영하기 위한 조치”라며 “미국의 일원으로 동화되어 국가 발전에 기여할 시민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시험 강화와 더불어 시민권 신청자는 ‘선한 도덕성(good moral character)’을 입증해야 하는 새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과거에는 범죄 이력이 없으면 통과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미국 사회에 기여한 긍정적 행위를 증명해야 한다. 이민국은 신청자의 가족, 동료, 이웃 등을 대상으로 추가 면담을 진행할 수 있다.
이민자 지원 단체들은 이번 조치로 시민권 취득 절차가 더욱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로스앤젤레스 중미자원센터(CARECEN)의 줄리 미첼 법률국장은 “이번 변화는 특히 문해력이 낮거나 교육 자원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민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도덕성 기준이 모호해 심사관의 자의적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USCIS 조지프 에들로 국장은 “현재 시험은 너무 단순하다”며 “미국의 헌법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확인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했다. 반면 버지니아대 로스쿨의 아만다 프로스트 교수는 “기존 제도가 부실하다는 증거는 없다”며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와 경제에 큰 기여를 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포춘 500대 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이민자나 그 자녀가 창업한 회사”라며 “귀화한 이민자들이야말로 미국의 번영을 이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트럼프 행정부의 광범위한 이민 억제 정책의 연장선이라고 분석한다. 최근 몇 년간 비자 발급, 망명 절차, 취업비자 심사 등이 강화된 가운데, 시민권 취득 문턱까지 높아지면서 이민자들의 정치·사회 참여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민단체 관계자는 “이번 개정은 단순한 시험 변경이 아니라, 미국 사회로의 진입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정치적 메시지”라며 “귀화를 꿈꾸는 수많은 이민자들에게 사실상 또 하나의 장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미향 기자 amiangs02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