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ABC news 캡쳐
미국의 저명한 미술관 큐레이터이자 교육자인 데이비드 A. 로스가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금융가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친분이 담긴 이메일이 공개된 이후, 뉴욕 시각예술학교(SVA)에서 사임했다.
SVA는 성명을 통해 로스가 학교 내 미술실기 석사(MFA) 프로그램의 아트 프랙티스 전공 학과장직에서 물러났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로스와 엡스타인 간의 서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공개된 2009년 이메일에서 로스는 엡스타인과 농담을 주고받고 만남을 제안하거나 위로의 말을 건네며, 그를 “놀라운 사람(incredible)”이라 부르거나 “여전히 친구라 부를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표현한 것으로 드러났다.
ABC 뉴스에 따르면 지난 2009년 한 이메일 교환에서 엡스타인은 ‘Statutory(법정 연령)’라는 제목의 전시를 제안하며 “14~25세의 소녀와 소년들이 실제 나이와 전혀 달라 보이게 등장하는 전시”를 언급했다. 이에 로스는 “당신은 정말 놀랍다”고 답하며, 배우 브룩 실즈가 10세에 나체로 촬영된 사례를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해 엡스타인이 법적 절차를 밟고 있을 당시, 로스는 그를 위로하는 이메일에서 “이건 당신이 필요로 했던 일도, 마땅히 겪어야 할 일도 아니었다”며 “친구로서 나에게 더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고 썼다.
로스는 사임 이후 ARTnews에 보낸 이메일에서 “1990년대 중반, 내가 휘트니 미술관 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엡스타인을 처음 만났다”며 “미술관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능력과 관심이 있는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당시 업무의 일부였다”고 해명했다. 휘트니 미술관은 이에 대한 논평 요청에 즉각 응답하지 않았다. 엡스타인은 2008년 미성년자 대상 성매매를 포함한 혐의로 플로리다주에서 유죄를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로스는 당시 엡스타인이 이를 “정치적 조작”이라고 설명했고, 그 말을 믿었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엡스타인이 다시 수사를 받을 때도 지지 의사를 전했는데, 이는 끔찍한 판단 착오였다”며 “그의 범죄 실체가 분명해졌을 때 큰 충격과 수치를 느꼈고, 그의 거짓말에 속았다는 사실이 지금도 부끄럽다”고 말했다.
로스는 휘트니 미술관 외에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보스턴 현대미술관, 버클리 미술관, 롱비치 미술관 등에서 주요 직책을 맡아온 미국 미술계의 중량급 인사로 꼽혀왔다.
이번에 논란이 된 이메일들은 법무부가 지난 금요일 공개한 300만 쪽이 넘는 엡스타인 수사 관련 문서의 일부다. 해당 자료에는 엡스타인과 교류했던 다수의 유명 인사들이 언급돼 있으며, 문화·정치·재계 전반에 걸쳐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공개된 엡스타인 문건에는 미국 정치권과 글로벌 재계, 왕실 인사들의 이름이 다수 등장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다만 법무부와 언론들은 “이름이 언급됐다는 사실만으로 범죄 연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긋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 엡스타인의 전용기를 이용한 기록이 다시 조명됐다. 클린턴 측은 과거 전용기를 이용한 적은 인정하면서도 엡스타인의 사유지인 ‘리틀 세인트 제임스’ 섬에는 방문한 적이 없다고 거듭 부인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과거 엡스타인과 함께 찍힌 사진 19장이 공개되며 민주당의 공세 대상이 됐다. 트럼프 측은 “수십 년 전의 일이며, 오래전에 관계를 끊었다”며 엡스타인 범죄와의 연관성을 전면 부인했다.
이 밖에도 영국 왕실의 앤드루 왕자,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링크드인 창업자인 리드 호프먼,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등의 이름이 이메일이나 명단에서 언급됐다.
안미향 기자 amiangs021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