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 혐오가 대한민국 제1 야당 대표의 목을 겨눴다. 비유적 표현의 ‘목을 겨누다’가 아니다. 13cm 길의 양날을 직접 갈아 만든 ‘검’을 쥐고 온몸에 힘을 실어 뛰어든다. 이재명 대표의 목을 향해 검을 찔렀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차마 지켜볼 수 없을 만큼 잔혹하다.
서울대병원 수술집도의에 따르면 속목정맥의 60%가 잘려나갔다. 속목동맥과의 거리는 1mm에 불과하다. 만약 칼끝이 종이 한 장 두께를 넘겼다면 제1 야당 대표는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것이 의료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정치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상대를 물리적으로 해를 입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정치생명을 끊어놓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으나 실제로 목숨을 끊어버려야 한다며 실행에 옮기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거의 없다. 김대중 납치살해 시도사건 이후 처음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직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독립운동을 이끈 백범 김구, 그는 좌우 대립의 과정에서 신탁통치 반대 등 우파 정치활동을 주도한다. 1947년 남북이 분단될 가능성이 있었다. 김구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던 이승만과 다른 의견을 주장했고 결국 분단을 막는데 실패한다.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는 현역 육군 소위이자 김구가 이끌던 ‘한국독립당’ 당원이었던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한다. 4발의 총탄이었다. 당시 정부는 한국 독립당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몰아간다. (현재 이재명 살해미수범이 민주당 당원이었다는 언론보도가 오버랩된다.)
국방부는 안두희가 김구와 한국독립당의 노선을 둘러싸고 언쟁을 벌였고 결국 총격을 가한 것이라고 발표한 뒤 한국독립당 조직부장 김학규를 구속한다.
이승만 대통령도 한국독립당 내분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한다. 7월 20일 군 당국은 최종 수사결과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려 한 친공산주의적인 한국독립당의 음모에 맞선 안두희의 ‘의거’라고 규정한다.
1992년 안두희의 육성 증언이 나온다. 그리고 1993년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1995년 12월 백범김구선생 암살진상국회조사보고서가 나온다.
암살범 안두희의 1차 배후는 군부였다는 것이 사건의 진상이다. 포병사령관으로 안두희의 직속 상관이자 같은 서북청년단 출신인 장은산이 암살을 명령한다. 사건이후 채병덕 총참모장, 전봉덕 헌병 부사령관 등이 사후처리를 주도한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을 거쳐 만주군과 경찰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당시 권력은 정권차원에서 가장 위협적인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동시에 김구와 한국독립당까지 공산세력으로 몰아붙이는데 성공했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코의 한 호텔에서 당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한국 중앙정보부의 주도하에 납치된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박정희에 맞서 선전했다. 1972년 일본에 체류하는 중 박정희 정권에서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해외에서 반유신활동을 전개한다.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1973년 8월 8일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기 위해 그랜드팔레스 호텔로 향한다. 그리고 납치된다.
선박 용금호에 감금된 채 채 동해로 강제 압송되는 중 바다에 던져질 위기에 처한다. 미국 정보부에 의해 목숨을 건진 김대중은 129시간 만에 8월 13일 서울의 자택 부근에서 풀려난다. 사건 발생 석달 후 김종필 총리는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을 담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서를 일본 다나카 일본수상에게 전달하고 다나카 수상 역시 납치사건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답하면서 김대중 납치사건의 진상은 묻혔다.
2007년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보고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의 지시 아래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한 납치’ 였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김대중과 민주화운동세력의 내란 음모를 조작한다. 김대중을 비롯한 24명이 국가보안법, 내란예비음모, 계엄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다. 1981년 김대중은 사형을 선고받는다. 1982년 3월 2일 무기징역에서 20년으로 감형된 김대중은 같은 해 12월 23일 형 집행 정지로 미국으로 강제 망명 당한다.
김구, 김대중, 이재명의 공통점은 정적 제거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정치적 혐오가 씌워지며 혐오의 대상이 됐던 정치인이며 목숨을 잃었고, 목숨을 잃을 뻔한 정치인이다. 보수우익이었던 김구 선생에게도, 평화주의자였던 김대중에게, 서민들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이재명에게 ‘빨갱이’ 낙인이 찍힌 것도 공통점이다.
김대중이 대통령되면 대한민국은 공산화된다고 외치던 사람들이 대를 이어 노무현이,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대한민국 공산화 된다고 외쳤다. 그들의 대통령 재임기간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다시 극우보수유튜버 및 논객들에 의해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대한민국을 북한에 가져다 바친다는 말이 생산, 확산되고 있다. 보수 언론과 보수와 일부 진보진영에서도 이재명을 악마화했고 이를 신봉하는 이들에게 이재명은 죽여야 하는 대상이 됐다.
정치적 견해는 다 같은 수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적대시해야 하는 대상으로 몰아가고 결국 혐오를 낳는다. 대한민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혐오에 길들여지고 있다.
없애야 할 대상을 찾고, 만들어내더니 결국 상대의 목숨을 끊으려는 자가 등장했다. 사람의 목숨은 소중하다는 것보다 혐오가 우선시되는 야만의 시대로 회귀했다. 인간이 되라는 말보다 동물이 될 지언정 악귀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의 말에 동의한다.
피부색깔이 혐오의 대상이 되고 정치적 성향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회는 결국 역사를 퇴행시킨다.
혐오가 낳은 야만의 시대, 정치적 이견을 가진 이를 악마화하는 시대, 2024년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텍사스N 안미향 대표기자 amiangs02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