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엘리스 From the Wonderland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아침시간 주방에서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나가 신선한 공기를 한번 들이마신다. 기지개를 쭉 한번 켜고 스트레칭도 해 본다.
음악은 아침을 활기있게 해 주는 클래식을 틀고 커피를 준비해 마시면서, 전날 씻어 놓아 잘 건조된 그릇들을 제자리를 찾아 정리해 넣는다. 이것이 아침 루틴인데 잘 닦여 건조된 그릇들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이것 때문에 피곤해도 웬만하면 저녁에 설거지를 해 놓고 자려고 하고, 식기세척기를 사용하기보다 손설거지를 주로 한다. 설거지 양이 예전처럼 많지도 않고, 더러웠던 그릇들이 깨끗해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즐겁다.
원래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 설거지를 잘한다 했던가. 갓 결혼한 그때부터 설거지를 특별히 잘 했던 것 같다.
대학때 상경해서 집을 떠난 나는 살림 특히 요리에 대한 훈련이나 연습하나 없이 어느날 갑자기 한 집안의 큰 며느리가 되었고, 솜씨가 좋으신 어머님이나 시누이가 하실때 보조 역할을 하면 되어서 굳이 음식을 도맡아 할 필요가 없었다. 실력을 쌓기도 전에 내 요리의 맛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을 듣는 것도 큰 스트레스가 되니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설 거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에야 주부 경력이 쌓인 덕분에 감탄이 나올 정도는 아니라 도 솜씨 너무 없다는 소리는 안 들을만큼 식구들 굶기지 않을 정도로는 하지만 집에 오시는 손님을 위한 요리준비에 약간의 긴장이 되는 게 여전한 걸 보면 요리보다 설거지가 나에겐 더 맞는 것 같다.
설거지를 좋아하고 잘한다고 했지만 가게나 교회 설거지 같이 많은 양을 매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묻고 싶다. 전 주인이 오픈하고나서 7개월 된 햄버거 가게를 7년 전에 사게 되었고 그동안 두 개를 더 열어서 현재 세 개를 운영중이다.
주방에서의 일은 재료 준비, 요리, 설거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다. 가게를 인수했을 때 식당 일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배워야할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우선적으로 음식 만드는 것을 집중해서 배우고 익숙하게 만들어 가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인 운영을 동시에 파악해야 했다. 다행히 재료준비와 설거지는 따로담당하는 직원들이 있어 신경을 덜 써도 되었다. 그러나 오후늦게 와서 마감까지 설거지만 하던 여직원은, 얼마지나지 않아 매일 다른 화려한 가발을 쓰고 오고 화장이 점점 짙어지더니 곧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그 다음 다른 직원의 동생인 남자 고등학생을 고용했는데 설거지도 ‘잘하고 혹은 못하고’가 있음을 그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일단 시간은 두 배로 걸리고 설거지가 끝난 그릇들에 세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게 다반사였다. 그 학생이 씻고난 그릇들은 여러번 다시 헹구어야 하니 기가 막혔다. 다른 일을 시켜보아도 제대로 하는 게 없어서 안타깝지만 그만두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설거지할 사람을 구하려는데 도무지 구해지지가 않았다.
재료준비하는 직원의 일하는 시간을 3시반까지로 연장하고 오전 설거지를 하게 하고 그 후에 설거지는 튀김요리 담당이 마감시간 후에 하도록 조직을 재구성했다. 튀김담당 직원이 갑자기 이사를 가고 설거지할 직원도 구해지지 않아 튀김요리와 오후 설거지를 몇달동안 내가 혼자서 할 수 밖에 없었다. 매상이 좋으면 좋을수록 수없이 많은 감자, 치킨, 생선과 새우를 하루종일 튀겨 내고, 재료들이 담겨있던 설거지거리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씽크대를 볼때면 얼마나 서글펐는지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가게를 열지 않는 날 가끔씩 들러 주방을 둘러 보면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여져 있는 조리 도구들을 볼 때 내가 일했을 때보다 더욱 정성스레 일을 해 주는 직원들이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럽다. 지금은 젊고 건강하며 빠릿한 성실한 직원들이 세 가게에 포진되어 있어 지난 시절을 이렇게 회상할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설거지를 안 해 보았다면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도 없고 그만큼 감사한 마음도 덜 할지 모른다. 주방에서의 모든 과정이 다 중요하지만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다고 가장 쉬운 일, 하기 싫은 일로 여겨지지만 위생과도 직결되어 있으니 설거지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주방에서 설거지 깨끗이 하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생각하시는지. 그 당연한게 당연하지가 않다. 제대로 닦이지 않은 용기에 담겼던 음식을 먹는다 상상하면? 나는 설거지를 사랑하고, 설거지하는 사람들을 예찬한다. 가족 혹은 손님들을 위한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희생과 손길이 담긴 그 소중한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