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는 받아적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1998년 대학 졸업 후 IMF로 인해 청년들의 취업은 매우 어려웠다. 국가부도는 금을 팔아서 나라 살림을 구하자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나라를 구하기 앞서 나부터 구하고 싶다는 절실함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달 월급 70만원으로 잡지사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잡지사에서 사회초년생활을 하며 편집장님께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미국 이민 후 한인신문사 생활을 했다. H-마트가 들어서기 전 달라스 한인타운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작은 규모였지만 언론사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취재를 나가면 다른 신문사 국장님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했고 선배들로부터 현장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는 계기도 됐다. 회사 내 사수의 지도와 회사의  방침, 기자 개인의 신념 그리고 선배들의 조언은 나를 성장하게 했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 기자생활을 한 선배를 만났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해 왔다 “받아적지 말라”고 “보도자료만 기다리지 말라”고.

오래전, 달라스 뉴스코리아에서 근무할 때 당시 한인상공회장님이었던 고근백 현 한인상공회 이사장님과 동네 기자들의 식사자리가 있었다. 당시 사우스 달라스의 한 주유소에서 흑인 손님과 한인 주인간의 갈등이 불거진 내용을 말씀하셨다. 얘기를 다 듣고 난 이후 난 기사화했다. 이건 당장 나가야할 기사로 일명 ‘속보 쳐야하는’ 내용 이었다.

당시 국장님도 “써야 하는 내용”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는 지역내 한인기자들에게 배신의 아이콘이 된다.

혼자서, 먼저 썼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선배기자였던 다른 신문사 국장님은 “기사를 안쓴 다른 기자들이 문제”라고 말씀해주시며 “잘했다”며 오히려 감싸주셨다. 당시 상공회장님도 기사와 관련해 “왜 썼느냐, 기다려야 한다”는 식의 말을 하지 않았다. 기자의 판단을 존중한 것이다.

누군가는 “안미향을 보면 죽인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가 국토안보부에 체포되는 현장을 기자가 목격했고 기사화했다. 하지만 실명을 거론했다는 이유로 “기사를 잘못써서”라며 “죽이겠다”는 말을 술자리에서 자주 했다고 한다. 기자는 실명이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같은 동네사람이니 ㅇㅇㅇ 씨라고 나가자”는 회사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편집국장님은 단호했다. 실명으로 나가야 한다고. 나도 동의했다. 그리고 십여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당시 안기자에게 분노하고 있을 지 모르겠으나 그때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기자의 판단이다.

기자는 자신의 판단을 믿고 속도전에서 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최근 안미향 이라는 이름 석자가 일부 몇 명의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달라스에서는 달라스 한인회 이사장 기사 때문이며 애틀란타 지역에서는 세계한상대회에 달라스가 유치경쟁에 뛰어들었다는 기사 때문이다. 두 기사 모두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았고 소식을 접하자 마자 바로 기사화 했다.

우선 달라스 한인회 이사장 기사부터 보자. 새로운 한인회의 출발, 새로운 인물들과 함께 하는 한인회에 대한 기대감을 담았다.

이사장 선임건이 엠바고였던가? 비밀스럽게 진행해야 하는 것인가? 한인회 내부에서 우려를 표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기사화 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기다려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기다려 달라고 해도 기다리면 능동적 기자라 할 수 없다. 난 수동적인, 시키는데로, 하라는 데로 하는 기자, 받아적기만 하는 기자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두번째 세계한상대회 유치 건이다. 달라스에서 유치경쟁에 뛰어들었다는 기사다. 다른 도시도 유치경쟁에 나선다면 나는 똑같이 대할 것이다. 애틀란타, 로스앤젤레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어디가 됐건 미국에서 첫 한상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핵심이다. 어느 도시에서 유치하건 그건 두번째다. 하지만 일부에서 기자의 기사를 보고 “달라스에 유치한 것처럼 썼다”는 오해를 한다.

기사를 다시 읽어보시라 추천해드리고 싶다. 제목부터 다시 살펴보시라 조언드린다.  단 한마디도 달라스에서 한다고 한 적이 없으니.

기자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동포사회 화합을 위해 좋은 내용만 써달라”는 것이다. 동포사회의 화합을 위한 기사 좋다. 잘한 일은 잘했다고 하고 지적할 일은 지적하며 문제가 되는 것은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분명하게 말하는 것도 동포사회에 알권리를 제공하는 기자의 역할이다. 기자의 판단은 기자 몫이다. 혹여 오보가 난다면 오보에 대한 사과와 정정을 하고 다시는 오보를  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자는 단체장이 원하는데로 받아 적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단체장들이 기사 속도를 완급 조절하려 한다던가 기사 내용을 첨삭하려 한다는 것은 기자의 판단을 무시하는 행위다. 편집권은 기자가 속한 회사에 있다.

 

안미향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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