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人間)은 모태(母胎)에서 태어날 때 적수공권(赤手空拳), 빈손이다. “빈손”, 이것이 모든 개체(個體)들의 시작(始作)이다. 젖을 먹기 위해 사력(死力)을 다하는 간난쟁이를 보라. 이것이 살아남기 위한개체들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이며 섭리(攝理)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生命體)는 출발점(出發點)에서부터 경쟁(競爭)하며, 사멸(死滅)할 때까지 경쟁을 지속(持續)한다. 경쟁은 모든 생(生)의 전부(全部)이니 곧 시(始)와 종(終)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우리 사회(社會)는 경쟁하는 사회다. 인류(人類)의 역사(歷史), 곧 자연의 역사는 경쟁의 역사, 적자 생존(適者生存)의 역사다. 모든 역사기록(記錄)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다. 역사는 최적화(最適化)된 개체들의 생명록(生命錄)이다. 아마도 이것이 진화론(進化論)의 과정(過程)일 것이다. 사욕(私慾)과 국익(國益)의 기초(基礎)도 경쟁 즉 “살아 남기”일 것이다.
놀음판(板)이나 카지노(Casino), 초등학교 운동회(運動會)나 올림픽 경기(Olympic Game), 다보스 포럼(Davos Forum)이나 허다(許多)한 전략 연구소(戰略硏究所), 모두가 경쟁을 염두(念頭)에 둔 다툼의연습장(練習場)이다. 경쟁은 아무리 미화(美化)해도 경쟁일 뿐이다. 개인간에 다투고, 국가끼리 싸우고, 이념(理念)들도 서로 부딪친다. 세상은 어차피 갑(甲)이, 승자 독식(勝者獨食)으로 짜여 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順理)다. 패자(敗者)는 도태(淘汰)된다. 동정론(同情論)이 설만한 낙토(樂土)는 어디에도 없다.
한반도(韓半島)에서 일어난 1950년6월25일의 사변으로 남북(南北)이 모두 철저(徹底)한 폐허(廢墟)를 경험(經驗)하니 이는 실패(失敗)와 치욕(恥辱)의 시간(時間)들이였다. 한민족(韓民族)은1592~1998사이에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왜란(倭亂)과 이어진 호란(胡亂)으로 궁궐(宮闕)에서 촌가(村家)까지 괴멸(壞滅) 되었고, 국토(國土)는 거덜이 나도록 몰락(沒落)했지만, 인간의 사욕(私慾)만은끈질기게도 그 와중(渦中)에서도 건재(健在)했다.
왜구(倭寇)와 오랑캐의 난(亂)이 터지기 전(前)에 사림(士林)들의 사화(士禍)가 연(聯)했다. 6.25사변이 있기 전에 전조(前兆)들인 진영(陣營)간의 싸움으로 나라 안는 너무나 혼란(混亂, Chaotic)스러웠다. 소위(所謂) 해방공간(解放空間)이 그것이다. 사회 지도자 들과 백성들은 패(牌)가 되어 쟁투(爭鬪)로 분열(分裂)하니 형제(兄弟)와 가솔(家率)이 서로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憎惡)했다.
임진왜란(壬辰倭亂)과 6.25 사변은 너무도 어리석은 나라의 소탐대실(小貪大失)이였다. 사욕(私慾)에눈이 멀어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지니, 강대국(强大國)의 용병(傭兵)을 자처(自處)하며 불 섭에 뛰어든 나방이 꼴이 되는 치욕(恥辱)을 자초(自招)하고도 실상(實狀)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이는 스스로가“한민족(韓民族)이 백치(白痴)”임을 세계 (世界)에 알린 격(格)이 였다. 나라가 이 보다 더 바보스러울수 있겠는 가?
우리는 경쟁이란 말에 신사도(紳士道), 선의(善意), 공생(共生, Win-win) 등의 좋은 말을 첨가(添加)하지만, 어찌하리 국가간 경쟁에 그런 고상(高尙)한 말들이 어울리겠는가? 역사의 망각(妄却)은 비극(悲劇)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아직도 바보인가 스스로에 묻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