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텍사스N] 태백 석탄박물관 8전시실 내부에는 광부들의 갱도 생활을 재현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탄광촌 강원도 태백.
태백은 대한민국의 70년대와 80년대 산업화를 이끄는 에너지를 만든 대표적인 중추도시였다. 전국의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일명 ‘검은 금’으로 밝은 미래를 계획했던 이들로 활기가 넘치던 도시다.
하지만 탄광 산업을 이끈 기업주들의 배는 불렸지만 탄광촌 노동자들의 삶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노동자의 아이들은 교육과 문화 혜택을 받기 쉽지 않았다. 학교교육은 받았지만 서울의 아이들이 누리던 다양한 문화와 경험은 부족했다. 그럼에도 젊은 광부들은 어두운 지하 800미터에서 석탄을 캐내고 분진가루를 들이마시면서도 가족에 대한 부양, 자녀들의 성공을 향한 꿈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돈을 아껴야 했다. 탄광 근처 허름한 공동주택에 머물며 아침 저녁으로 탄가루가 잔뜩 묻은 옷을 입은 채 퇴근한다. 없는 형편에 고픈 배를 채워야 했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아낀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은 보리밥에 김치, 단무지(당시에는 닥꽝이라 불렸다)가 전부다. 탄가루가 섞인 밥, 탄가루가 묻은 손, 탄가루가 가득찬 갱도. 그들은 힘겨웠으리라.
아버지니까,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까, 텁텁하고 쓴맛이 느껴지는 탄가루가 혓바닥을 자극해도 매일 매일 석탄을 캤을 것이다.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는 언제나 그들을 위협한다. 그럼에도 땅을 뚫는 일을 지속했을 것이다. 벌어야 했으니!
고된 하루를 마치고 일부는 집으로, 일부는 함께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잔 했을 것이다. 가족들 먹여살리는 것이 전부였던 광부들에게 닭고기는 사치다. 닭 맛은 나면서도 양을 늘리는 방법을 고민했을 테다.
그것이 오늘날 태백의 ‘물 닭갈비’다.
쌀뜨물 육수에 야채가 듬뿍 들어간다. 거기에 면도 추가된다. 닭고기는 많지 않다. 그것이 바로 물닭갈비다. 먹어야 할 입은 많은데 그 입들이 좋아하는 닭고기는 양이 한정적이다
결국 양을 늘리는 수 밖에 없다. 텃밭에 키우던 야채들을 집어넣는다. 면과 떡 등 갖은 탄수화물 등을 추가해 열량을 가능한 한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닭고기는 많지 않지만.. 닭국물 맛인 난다. 따로 육수를 내지도 않고 쌀뜨물이 전부다. 그것이 태백의 물닭갈비다.
없는 형편에 아이들에게 고기는 먹여야겠고, 고기를 먹이자니 돈이 없다. 그래서 형편껏 닭고기를 사고 솥에 담는다. 그리고 물을 붓는다. 야채를 추가한다. 떡과 국수도 넣는다. 야채를 씹는 중간중간 닭고기 맛을 느낄 때 도파민이 터졌을 터!
오늘날에는 관광객들에게 한번쯤 먹어볼 만한 지역 향토 음식이 됐다. 물닭갈비를 전문으로 파는 식당들도 늘었다. 태백산을 등반하고 내려오면 뜨끈한 국물에 닭고기 한점 먹는다. 태백이 아닌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음식이자 낯선 음식이다.
그러나 물닭갈비가 가진 사연은 알 수가 없다. 나 역시 직접 먹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탄광촌 광부들을 기억하는 ‘물닭갈비’는 화려했던 산업중추 도시의 과거를 담았고 그안에서 힘겨운 삶을 겪어야 했을 광부들의 땀이 담겼다.
광부들의 아픔을 달래는 치료제였음을 깨닫는다. 과거 광부들의 노고에 바치는 헌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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