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Samsung Semiconductor Global
- TSMC “2027년까지미국 내 생산력 이미 매진”
- 미중 무역 갈등·수요 위축 등 대외 변수도 악영향
- 가동은 미정이지만, 완공은 강행할 듯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대규모 반도체 공장의 본격 가동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매체 닛케이는 삼성의 텍사스 팹이 거의 완공됐는데도 불구하고 2026년에 가동키로 했다며 주된 이유는 고객 주문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2022년 테일러 팹 건설을 시작하며 170억 달러를 투자했고, 2024년 들어 총 투자금액을 440억 달러로 증액해 첨단 생산라인과 R&D 설비를 추가할 계획이었다. 미국 정부 역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CHIPS법’에 따라 66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실제 공장 가동 시점은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 총괄을 맡고 있는 삼성물산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 공사 진행률은 92%에 달했으나 당초 4월로 예정됐던 완료 시점이 10월로 연기됐다.
일본 닛케이는 이 같은 지연에 대해 “단순 공정 문제를 넘어, 고객 자체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며 복수의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테일러 공장은 당초 4나노미터(nm) 공정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었으나, 시장 상황 변화로 현재는 2nm 공정으로의 전환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2nm 공정은 훨씬 정교한 장비와 기술이 필요한 만큼 실제 전환까지는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전망이다.
반도체 공급망 관계자는 “삼성이 수년 전 계획한 공정 노드는 더 이상 시장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공장을 완전히 재구성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현재는 ‘관망 모드(wait-and-see approach)’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대만의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위치한 Fab 21에서 이미 4nm 공정을 본격 양산 중이며, 애플, AMD, 브로드컴, 퀄컴 등 주요 미국 고객사의 주문을 받아 2027년까지 생산력이 모두 매진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TSMC는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약 68%의 점유율을 보이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는 약 7.7%에 그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1996년부터 텍사스 오스틴에서 성숙 공정 팹을 운영하고 있지만, 테일러 팹은 신규 부지에서의 공급망 재구축, 전문 인력 확보, 장비 세팅, 고객사 발굴 등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Extreme Ultraviolet(EUV) 리소그래피 장비를 포함한 첨단 장비 설치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 장비들은 설치 비용이 수억 달러에 달할 뿐 아니라, 극도로 정밀한 셋업이 필요해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수율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부 핵심 인력이 현장에서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전반에 걸친 수요 위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공지능(AI) 및 데이터 센터 수요는 꾸준하지만, 소비자 가전과 자동차 등 전통적 반도체 수요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맞물려 부진한 상태다.
트렌드포스의 애널리스트 조앤 치아오(Joanne Chiao)는 “삼성은 고급 칩 생산에 대한 미국의 대중국 수출 제한으로 인해 평균 이하의 설비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추가 관세 조치까지 더해져 중국 수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은 자국 내 반도체 자립을 적극 추진 중이며, 미국산 장비와 기술을 대체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는 삼성이 향후 중국 시장에서 고객을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공식 입장으로 “2026년까지 테일러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정확한 일정이나 장비 설치 여부, 고객 확보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다만, 미국 정부의 CHIPS Act 보조금 수령을 위해서는 최소한 물리적 완공과 운영 착수 요건을 충족해야 하기에 일정 수준의 공장 가동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성은 이미 수십억 달러를 테일러 부지에 투자한 상태이며,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지연되거나 중단될 경우, 경쟁사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안미향 기자 amiangs02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