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고 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과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라는 책을 출간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는 도덕 철학에 관한 그의 여러저서 중 첫번째 책으로 오늘날 우리가 보편적 인권이라고 부르는 개념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칸트가 말한 도덕적 가치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칸트는 도덕을 말할 때 결과보다 동기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도덕적 가치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이유도 옳아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의 이론은 도덕적 행동 이면에 숨은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도덕적 또는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한다. 쉽게 말해 옳다고 믿는 행동에 ‘저의’가 있다면 이는 도덕적 또는 옳은 행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칸트의 이론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현대의 도덕철학과 사회정의, 정치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한인단체의 목적, 즉 텔로스란 무엇인가?
미주 한인사회에는 다양한 한인단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각자의 정관에 그들의 텔로스(telos, 목적, 목표, 본질)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간혹 텔로스(telos, 목적, 목표, 본질)가 불분명한 단체들이 눈에 띈다. 미주한인사회의 대표한다는 한인회, 그리고 한인회들을 연합했다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 및 기타 단체들에게 텔로스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두 가지의 예를 들고자 한다.
우선 미주한인회총연합회의 법정분쟁이다. 정통성을 여부를 두고 치열한 법정공방이 벌어졌다.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한 쪽은 승리했고 다른 한 쪽은 해당 재판에서 졌다. 재판결과는 한언 언론보도를 통해 나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이 칼럼을 쓰는 이유는 한인회와 한인회총연합회가 텔로스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통성이 있다 없다에 집중하다 보면 한인회총연합회의 목적과 목표, 본질에 대한 고민은 사라진다. 즉 텔로스가 불분명해 진다는 말이다. 법정싸움이라는 행위에 있어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입혀본다면 법정싸움의 동기는 ‘정통성’을 가진 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행위에 옳음을 주장하는 양측 모두 다른 ‘동기’가 있어 보인다. 표면적인 정통성에 집중하다 보니 총연합회의 목적과 목표, 본질은 한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미주한인사회의 모든 한인회들은 ‘한인사회를 위한 봉사’라는 텔로스가 있다. 하지만 표면적인, 꼬리를 무는 말로 인한 문제에 집중하다보면 ‘봉사’라는 텔로스는 허공에 떠있게 된다.
최근 휴스턴 한인회가 휴스턴 한인회 농악대 단장을 새롭게 추대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비영리단체로 한인회와 별개의 단체인 한인 농악단과 분명한 낱말의 차이가 있다. 휴스턴 한인회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휴스턴 한인회 농악대(영문으로는 농악단이라 적혀 있다. NONG AK DAN)’ 이라고 적었다. 비영리단체로 현재 활동중인 농악단의 공식 명칭은 ‘휴스턴 한인 농악단’이다.
한인회가 배포한 보도자료 하단에는 “그동안 여러모로 수고하여 주셨던 농악 대원 및 후원자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어려운 과제를 맡은 최종민 단장과 힘을 합쳐서 휴스턴 한인회 농악대에 큰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보이는 문자만으로는 현재 활동중인 휴스턴 한인 농악단과 다른 단체처럼 보인다. 하지만 휴스턴 한인사회가 모두 알고 있듯 현재 휴스턴 지역에서 농악단(또는 농악대)은 하나다. 보도자료에 적힌 “그동안 수고하여 주셨던 농악대원”이라는 부분은 현재 활동 중인 휴스턴 한인농악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3월 휴스턴 한인단체장들이 모여 농악단장 교체를 논의했다. 농악단은 한인회 산하라는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 19일 새로운 농악대 단장 추대 보도자료가 나왔다.
이마누엘 칸트의 도덕적 가치 이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텔로스를 여기에도 입혀 보자.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는 18세기 철학자의 이론을 입혔을 때 비영리단체를 이끄는 단장이 존재함에도 새로운 단장을 추대한다는 행위. 그 동기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발생한다. 그리고 행위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보도자료에는 ‘팬데믹으로 저조하였던 휴스턴 한인회 농악대에 활기를 불어 넣어줄 농악대 단장을 추대한다’고 동기를 적시한다. 다시 말해 “팬데믹으로 저조한 농악대를 재건한다는 것”이 동기이자 텔로스일테다.
하지만 이미 휴스턴 한인농악단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코리아 페스티벌 길놀이, 디스커버리 그린에서 설날행사 등 굵직한 행사를 치렀다.
보도자료의 ‘팬데믹 당시 저조했던 한인회 농악대’ 가 따로 존재할 수 도 있다. 기존 한인농악단은 팬데믹에도 마스크를 쓰고 연습에 매진했고 지난해 대규모 공연도 두차례 했기에 ‘저조했던 한인회 농악대’가 아니며 ‘한인회 농악대(이는 한인회의 농악대라고 해석된다)’도 아니다.
칸트는 도덕적 가치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이유도 옳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옳다고 믿는 행동에 저의가 있다면 이는 도덕적 또는 옳은 행위가 아니라는 의미다. 한인회의 농악단장 추대가 옳은 일이 되기 위해서는 이유도 옳아야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새로운 농악단장 추대의 이유가 옳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비영리단체로서 정관까지 보유한 농악단의 단장을 한인회가 추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여론이 다수를 차지한다. 한인 농악단원들도 모두 말이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칸트의 이론대로 한인회 입장에서 농악단장 추대 행위가 도덕적 가치가 있으며 옳은 행위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동기, 즉 이유가 옳다고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니 이유가 옳다고 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여기에 한인회가 결정한 새로운 단장 추대 행위의 목표와 본질을 궁금해 하는 이들도 많다. 왜일까?
한인회가 한인회 산하도 아닌 비영리 독립단체의 새로운 농악단장 추대한 목적 그리고 본질, 즉 텔로스가 무엇인지 질문 해본다.
안미향 텍사스N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