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대 웨이드’ 이끈 변호사, 세라 웨딩턴 별세

“여성의 삶을 결정짓는 기본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여성 자신”

 

사진 /Kxan 캡쳐

여성의 낙태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이끈 변호사 세라 웨딩턴(Sarah Weddington이 향년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세라 웨딩턴은 1945년 텍사스 애빌린 출신으로 멕머레이 대학교에서 학부를 마친 후 텍사스대학교 오스틴(UTA) 법대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세라 웨딩턴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건 바로 ‘로 대 웨이드’ 사건이다. ‘로 대 웨이드’ 소송은 텍사스에 거주하던 노마 맥코미(제인 로 라고 불림)가 낙태를 금지한 텍사스법에 맞서 당시 달라스 카운티 검사장이었던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말한다.

제인 로와 헨리 웨이드의 성을 따 ‘로 대 웨이드’ 소송이라 불리는 이 소송에서 대법원은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1973년 최종 대법원 판결에서 낙태금지는 위헌이라는 의견이 7명, 위헌이 아니다라는데 2명이 투표했다.

미국에서 여성의 낙태권이 보장되는 계기가 된 역사적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바로 세라 웨딩턴이 이끌었다. 이후 세라 웨딩턴은 지미카터 행정부에서 여성문제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민주당 하원의원 재직시절에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법을 통과시키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세라 웨팅턴은 정계은퇴 후 오스틴에 거주하며 모교인 텍사스 대학교에서 28년동안 법학을 가르쳐왔고 텍사스여자대학교에서도 19년 동안 학생들을 지도해왔다.

평생을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싸워 온 세라 웨딩턴은 자신의 저서 선택의 문제 (Question of Choice)에서 “우리는 1970년 싸움의 승리 이후 로(Roe)에 대한 공격은 무자비했다”며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대의에 동참하는 것을 봤다. 우리 세대는 그들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할 것이며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그들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적었다.

고인은 “여성의 삶을 결정짓는 기본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여성 자신”이라며 여성 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여성의 낙태권이 위헌이 아니라는 결과를 얻어낸 텍사스지만 텍사스는 다시 낙태금지법을 통과시켰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6대 3의 보수지영이 우위다. 따라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방정부는 연방대법원에 텍사스 낙태 금지법 효력 정지를 요청했지만 기각된 바 있다.

 

안미향 기자

텍사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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