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남 칼럼] 광시(狂詩) 빨갱이(Reds)-살인의 추억(殺人의 追憶)

"오래동안 '빨갱이' 이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였다"

 

태양(太陽)을 송두리째 입에 문 원색(原色)은 눈부시게 강열(强熱)하다.
그러나 정치로 채색(彩色)된 이 색깔은 살인 도구(道具))다.
살인의 납덩이 그림자가 드리워진, 6.25가 스쳐간 한반도(韓半島)에서 빨강색은 지금도 살인의 낭만(浪漫)이 넘실대는 색깔이다.
오래동안 “빨갱이”이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였다. 유사(類似) 어, 북한 간첩(間諜), 공산당(共産黨), 통일 바라기 “친북(親北)”은 문명(文明) 살인의 문턱을 넘나 들었다. 이 낭만(浪漫)의 색깔과 어울린 단어들은 금기(禁忌)의 영역(領域)이다.

박영남 달라스 한인상공회 상임고문

단군(檀君)이래 최대의 집단 살인광(殺人狂)이 지나간 자리에는 한 세기(世紀)가 다 되는 오늘도 살인의 원혼(寃魂)이 꽈리 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변한 것이 없는 그대로다.

빨강은 인터넷에서도 활개치며 시민(市民)사회를 짓 누르고 있다. 일제(日帝)시대 만주(滿洲) 벌판에선 독립운동(獨立運動)의 한 축(軸)이 였지만 극동(極東) 러시아 볼셰비키(Bolshevik) 혁명(革命)의 거친 바람을 비켜낼 수는 없었다.

일본군(日本軍)과 싸우며, 만주 벌 마적(馬賊)과 싸우면서도 멀리 모스크바(Moscow)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 살기(殺氣)는 여전(如前)했다.

전쟁(戰爭) 때 “빨갱이”는 곧 죽음이 였다.
빠르게 전개(展開)되는 전장(戰場)에서 사리(事理)의 논의(論議)는 설 자리를 잃었다. 속전속결(速戰速決)의 인민재판(人民裁判)엔, 긴 말보다 짧은 “옳소” 소리만 귓 창 때리며 울리는 유일(唯一)한 언어(言語)였다.

망령(亡靈)은 오늘도 주변(周邊)을 맴 돌며 삼킬지를 찾는다.
펄럭이는 붉은 깃발은 아직도 무고(無辜)한 이들은 집어 삼킨다. 선거(選擧)철 정치판과 모든 표현(表現)의 영역에서,

택일(擇一)을 강요하는 서릿발 삭풍(朔風)이 속살을 후벼 판다.
빨강은 아픔과 소름의 음습(陰濕)한 냉기를 뿜는 색광(色狂)이 였다. 천지(天地)를 집어 삼킬 듯 덤벼드는 태양의 이글거림은 한반도를 융단폭격(爆擊) 중이다.

태양신(紳)의 영역, 적도 우림 (赤道雨林)은 열정(熱情)과 광기(狂氣)어린 희열(喜悅) 뿐이다. 소고(簫鼓)가, 발 빠른 몸 놀림이, 손 벽 울림이, 햇빛도 춤추게 한다. 한반도는 지금도 숨 막히는 원시림(原始林) 속에 갇혀 있다. 색맹(色盲)이 되고, 앞 못 보는 맹인(盲人)이라도 되었음 좋겠다. 보는 일도 버거워 포기(抛棄)하고, 눈이 닫히면 새 마음이 열릴래나.

강열한 빨강 빛이 안데스(Mts Andes) 설산(雪山)을 덮으며 눈 부신 흰 눈은 그대론 데. 우리는 빨강을 너무 잘못 이용(利用)했고 무심(無心)히 마구 잡이로 남용(濫用)해 온 것만 같다.너무 많은 영혼(靈魂)들이 돌팔매에 죽어 갔다. 치유(治癒)의 기미는 어디에도 없고 증오(憎惡)의 짙은 먼지만 켜켜이 싸인다. 마구 내려 쪼이는 햇살은 모두를 태우며 마을도 삼킨다.

이마에 쓰인 형판(刑判)엔 극형(極刑)의 난장(亂杖)만 보이고 고장(故障)난 신호(信號)들만 어지러이 춤 춘다.
그래서 차별(差別), 불공정(不公正), 수탈(收奪), 따돌림도 덩달아 엉덩춤을 춘다.

통일(統一)은 점점 멀어만 가는데, 아!
머저리 우린 지금도 이 광기(狂氣)어린 노래를 같이 불러야 하는데,
끝을 봐야 하는데 도무지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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