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 다섯명이 가평에 있는 현리유원지에 놀러갔다. 수목원에서 사진도 찍고 여름방학이니 물놀이는 필수! 우리는 직사각형 모양의 1인용 공기매트 하나에 의지하며 유원지의 여름을 만끽했다. 서울에서 가평까지 갔으니 정신줄 놓고 신나게 물놀이에 매진하자는 마음이었다. 1인용 공기매트는 딱 한사람이 누워있을 수 있는 크기였지만 여자 아이들 4명이 달라붙어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유원지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 채로 우리의 웃음소리는 유원지 전체를 덮고도 남을 만큼 컸다. 몇분 지났을까? 매트는 뒤집어졌다. 물속은 깜깜했고 숨이 막혀왔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고 저수지 물은 한움큼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저수지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뭔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버려진 밧줄이었고 내 왼발목은 밧줄에 엉킨다.
난 그날 영락없이 죽는 것이었지만 더 오래 살아도 된다는 하늘의 뜻이었는지 다행히 엉킨 밧줄이 풀리고 초인적 힘으로 바닥을 밀었다. 내 몸은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고 나를 물속에 매다 꽂은 문제의 공기매트가 손끝에 닿았다. 그리고 사흘동안 극심한 두통을 겪었다. 2022년이 된 현재까지도 그때 그 당시의 두통을 단 한번도 다시 겪어본 적이 없다. 산소부족이 원인라고 한다. 난 뇌손상 직전에 내힘으로 밧줄을 풀고 나왔다. 조금만 늦었다면 죽었거나 살아도 뇌손상을 크게 입었을 거라고 의사는 말했다. 천운이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나는 수영을 못한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 포비아를 극복해 보겠노라며 수영레슨을 받기도 했다. 라이프자켓에 의지해서 겨우 물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이후다.
가평에 수상스키장 일명 빠지라고도 부른다. 수상스키장에서 처음으로 웨이크보드를 탄다. 초보자이기에 당연히 물에 빠진다. 그런데 웨이크 보드는 물에 빠져도 보드가 벗겨지지 않는다. 그렇게 고꾸라진 자세로 다시 한번 물속 어두움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난 매우 빠른 속도로 몸을 뒤집어 내 눈이 하늘을 향하도록 한다. 그러길 수차례 결국 탈진한 나는 또다시 내안의 물 공포를 이겨내지 못했다.
수상스키로 바꾼다. 스키는 물에 빠져도 스키가 벗겨지고 라이프자켓을 입고 있기에 안심이 됐다. 어느정도 숙련이 되기 전까지도 발이 닿지 않는 물속에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내안의 공포와 정면승부를 걸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발이 닿지 않는 깊이의 물속은 라이프 자켓 없이 들어가지 못한다. 숨을 쉬지 못하고 심박이 빨라지며 극도의 불안과 공포가 오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이후 생겨난 공포와 트라우마를 이겨보겠다고 30여년을 노력했지만 라이프자켓 없이는 발이 닿지 않는 깊이의 수영장에는 여전히 못들어간다. 케이블카도 잘 못탄다. 고층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도 쉽지 않다.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도 안탄다. 고2 때 현리유원지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내게 ‘물 공포’와 ‘트라우마’는 평생 나와 함께 할 것이라 생각하며 체념했다.
똑같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단체로 가는 길이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깔깔대며 온갖 수다를 떨며 들뜬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을 아이들이다. 평소에 어른들은 말했을 것이다. 선생님 말 잘 들어라. 어른들 말 잘 들어야 착한 학생이다. 그렇게 어른들 말 잘 들은 아이들은 세월호와 함께 잠겼다. 영원히! 물에 빠져 본 사람은 안다. 물에 빠지는 순간 숨막히는 것이 어떤건지. 그리고 물속이 얼마나 어두운지! 그 어둠이 얼마나 큰 공포인지! 물에 빠져 눈을 떴을 때 본 어두운 물속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깜깜한 밤, 불빛이 하나도 없는 방안과 비교 자체가 안된다. 물속의 깜깜함은 말 그대로 ‘공포’다. 그때 숨막힘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기억이 나면 어김없이 두통도 같이 온다. 30여년이 지나도 말이다. 그게 트라우마다.
숨막히는 고통! 이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써서는 안된다. 숨막히는 건 죽음이 내 코앞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 많은 어린 영혼들이 물속에서 숨이 막혀갔고 겨우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남겨진 트라우마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30여년 동안 나는 물이 무섭다. 발이 안닿으면 숨조차 쉬기 힘들다. 트라우마란 그런 것이다.
이번 주 토요일은 세월호 8주기다. 2014년 4월 16일 아이들이 물속에 잠겼다. 내가 죽을 뻔 했던 고등학교 2학년, 단원고 아이들도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겪는 트라우마의 고통이 어느정도인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그 만큼의 무게다.
난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월호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도 슬프지만 살아남은 아이들이 평생 안고가야할 트라우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안다. 난 너무나 잘 안다. 난 두 아이의 엄마이고 익사 직전에 살아남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앞에 두고 좌파니 우파니 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죽었고 친구들의 숨이 막혀 말한마디 못하고 죽음을 맞는 것을 현장에서 본 아이들이다. 어른이 된 우리는 그저 그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조용히 안아주길 바란다. 그것이 사회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그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