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텍사스트리뷴 (Credit: Justin Hamel for The Texas Tribune)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3월 서명한 행정명령이 연방법 위반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해당 명령은 18세기 제정된 ‘적국민법(Alien Enemies Act)’을 근거로, 베네수엘라 범죄조직 트렌 데 아라과(Tren de Aragua·TdA) 소속으로 지목된 이민자들을 신속히 추방하기 위해 발동됐다.
그러나 9일(월) 텍사스 엘파소의 연방 판사 데이비드 브리오네스는 56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헌법상 정당한 절차(due process)를 위반했으며,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침공 여부를 정의하고 외국인을 ‘적국민’으로 규정해 즉시 추방하는 것은 법률이 허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판결은 현재 엘파소부터 샌안토니오까지 이어지는 서부 텍사스에 구금되어 있는 TdA 조직원으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한 추방을 금지하지만 이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명령하지는 않았다.
브리오네스 판사는 특히 “TdA 조직이 미국 내에서 폭력적 활동을 벌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적국민법에서 말하는 군사적 침공이나 영토 점령 시도와는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TdA를 베네수엘라 정부의 지원을 받는 범죄조직으로 규정하며, 적국민법을 근거로 이들을 엘살바도르의 악명 높은 교도소로 강제추방해왔다.
하지만 브리오네스 판사는 “대규모 불법 이민이나 범죄 행위가 적국민법이 정의하는 무력침공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미국 정부가 국경을 보호하고 조직범죄에 대응할 권리는 있지만, 그것은 의회가 통과시킨 이민법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법원 문서에 ‘M.A.P.S.’로 식별된 33세 베네수엘라 여성의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 여성은 2023년 바이든 행정부의 CBP One 앱을 통해 합법적으로 미국에 입국했고, 임시보호지위(TPS)도 부여받았다. 그러나 2025년 4월 오하이오에서 ICE에 체포돼 TdA 조직원으로 지목됐다. 그녀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정부가 단순히 문신만을 근거로 조직 연계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변호인인 ACLU(미국시민자유연맹)의 리 겔런트 변호사는 “적국민법은 전시 상황에 한해 적용되는 법으로, 평시에는 절차적 정당성 없이 사람들을 구금하거나 제3국으로 추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브리오네스 판사는 “미국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 법적 지위와 관계없이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절차의 권리를 가진다”며, 정부가 적국민법을 적용해 외국인을 추방하려면 최소 30일 전 통지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집단소송으로 인증돼, TdA 연루 혐의로 서부 텍사스에 구금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또한 이들을 미국 내 다른 지역으로 이송하거나, 적국민법을 근거로 추방하는 것을 금지했다.
다만 브리오네스 판사는 “정부가 의회가 제정한 이민법에 따라 이들을 구금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막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한편 백악관과 미 텍사스 서부지검은 이번 판결에 대한 입장을 즉각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