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Samsung’s foundry chip plant in Taylor, Texas (Courtesy of Samsung Electronics)
- “고객 없는 공장” 비판 받던 테일러 팹, 전환점 맞나
- 파운드리 적자 5조 넘어…삼성 “TSMC와 격차 줄이기 본격화”
- CNN “미·한 반도체 협력의 ‘전략 카드’ 될 수도” 분석
삼성전자가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약 165억달러(약 23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삼성의 적자에 허덕이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며, 텍사스 테일러시의 반도체 공장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간 반도체 협력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X(옛 트위터)에 “삼성과 테슬라가 차세대 인공지능(AI) 칩 ‘AI6’를 생산하는 계약을 맺었다”며 “계약 규모는 최소 165억달러지만, 실제 생산량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삼성은 테슬라가 생산 효율 극대화를 지원하도록 허용했고, 내가 직접 생산 라인을 점검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삼성 테일러 공장은 머스크 자택에서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 소식에 힘입어 장중 6.8% 상승, 지난해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테슬라 주가도 미국 프리마켓 거래에서 1.9% 올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2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대형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했지만, 그간 주요 고객을 확보하지 못해 고전해왔다. 지난 10월에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로부터의 장비 납품도 연기한 바 있다. 공장 가동 시점은 이미 2024년에서 2026년으로 늦춰졌다.
NH투자증권 류영호 연구원은 “테일러 공장이 사실상 ‘고객 제로’ 상태였던 만큼 이번 계약은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은 이미 테슬라의 기존 자율주행 칩인 ‘AI4’를 생산 중이다. 테슬라는 ‘AI5’ 칩은 TSMC가 생산하고 있으며, 향후 ‘AI6’은 삼성의 테일러 공장에서 본격 양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계약 상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테슬라가 해당 계약의 고객사라고 전했다.
계약 기간은 2033년까지로, 장기적 협력이 예고돼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 8% 수준으로, **대만의 TSMC(67%)**와 격차가 크다. 고객 이탈 문제도 지속되고 있다. TSMC는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초대형 고객사를 확보한 반면, 삼성은 지난 몇 년간 주요 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며 기술 격차와 수율 논란에 시달렸다.
특히, 파운드리 부문은 올해 상반기에만 5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은 이르면 25일 발표될 실적 발표에서 관련 손실을 공시할 것으로 보인다.
기웅증권 박유악 연구원은 “테슬라 계약은 삼성 파운드리 적자폭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기존 고객 이탈로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서 단일 고객이지만 규모가 커서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말했다.
SK증권 이동주 연구원은 AI6 생산 시점에 대해 “이르면 2027~2028년”으로 예측했다. 다만, 테슬라는 과거에도 칩 생산 일정을 자주 지연한 전례가 있어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CNN은 이번 계약은 미국과 한국 간 반도체 동맹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의 통상 협상에서 반도체·조선 분야 협력을 전략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이 검토 중인 한국산 제품에 대한 25% 추가 관세 가능성을 완화하기 위한 교섭 수단이라는 것이다.
삼성은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지만, 이번 계약은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와 AI 반도체 시장 진출에 주력하는 이재용 회장의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테일러 공장은 그 전략의 중심축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TSMC가 선점하고 있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의 존재감을 확대할 수 있는 첫 걸음”이라며 “삼성이 파운드리 기술력과 수율 문제를 얼마나 극복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안미향 기자 amiangs02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