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텍사스트리뷴( Credit: Michael Minasi)
- “주택 소유 1년이면 텍사스 주민”
- 불공정성 논란…“부자만 활용 가능한 제도”
- “등록금 절감이 콘도 시장 움직인다”
- 주 정부는 ‘무관심’…“불공정 우려 커져”
- 텍사스 외 지역 출신 학생 ‘거주자 등록금’ 조건… ▲텍사스 주민과 결혼 ▲20시간 이상 일반직에 종사 ▲텍사스 내 사업체 소유 ▲부동산 소유
텍사스 대학교 입학을 앞둔 학생들을 위해 가족들이 콘도를 매입하고 이를 통해 텍사스 주민으로 등록해 수만 달러의 등록금을 아끼는 ‘틈새 전략’이 부유층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텍사스주 법에 따르면, 주 외 지역 출신 학생도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거주자’로 간주돼 저렴한 등록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해 일부 부유한 가족들이 자녀 명의로 주택을 매입하고 이를 통해 ‘거주자 등록금’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UT 오스틴 대학 인근 낡은 콘도 하나. 천장엔 팝콘 텍스처 마감이 되어 있고, 바닥은 비닐이 일그러져 있으며, 욕실은 청소도 되지 않은 채 곰팡이 냄새가 났다. 하지만 뉴저지 출신 한 가족은 이 주택을 덥석 샀다. 이 낡은 콘도는 자녀가 UT 오스틴에서 연간 3만 달러 가까운 등록금을 아끼는 ‘패스’였기 때문이다.
부동산 중개인 밀러 길(Miller Gill)은 “이 지역 부동산 시장의 핵심은 집값이 아니라 등록금 절감”이라고 말했다. UT 오스틴과 협업하는 중개인들은 이런 거래를 연간 수백 건씩 성사시키고 있다.
텍사스는 주 외 지역 출신 학생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거주자 등록금’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조건은 크게 네 가지인데, ▲텍사스 주민과 결혼하거나 ▲20시간 이상 일반직에 종사하거나 ▲텍사스 내 사업체를 소유하거나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 중 부동산 소유는 절차가 가장 간단하다. 일부 부동산 중개인은 “수표만 쓰면 끝”이라며, 지난 10년간 수백 명의 가족에게 주택 구입을 도와줬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가족들이 자녀 명의로 콘도를 매입한 뒤, 1년이 지나면 자녀가 ‘주민 등록금’ 자격을 신청할 수 있다. 이 방식으로 학생 1인당 평균 9만 달러(약 1억 2천만 원)의 학비 절감 효과를 본다는 계산이다.
현행법상 대학 측은 학생이 실제로 등록금 할인 자격을 어떻게 취득했는지 외부에 공개할 의무가 없고, 주 교육청도 관련 통계를 관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KUT News는 트래비스 카운티의 부동산 기록과 등록자료를 분석해 2019년 이후 최소 150명의 학생이 이 같은 방식으로 주택을 구입했음을 확인했다.
이들은 평균 2년간 콘도를 소유하다가 졸업 즈음 다시 판매했으며, 일부는 형제자매 간 명의를 바꿔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형식상 합법적이라 해도, “현실적으론 돈 있는 사람들만 쓸 수 있는 특권”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캘리포니아 출신 졸업생의 아버지는 “당시엔 이게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투자한 셈이었다. 다만 성공한다면 9만 달러 이상을 아낄 수 있는 게임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 가족은 자녀 명의로 현금으로 콘도를 구입하고, 그 자녀는 해당 주택에 거주하지 않았음에도 등록금 할인 혜택을 받았다.
UT 오스틴은 2024년부터 소유한 주택에 실제 거주한 증거를 요구하도록 규정을 강화했지만, 중개인들은 “사업체를 만들고 해당 콘도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우회 가능하다”고 말한다.
부동산 중개인 제시 마무헤와(Jesse Mamuhewa)는 “세 자녀가 모두 UT에 2년 간격으로 입학해 같은 콘도로 등록금 할인 혜택을 받은 가족도 있다”고 밝혔다.
이 전략은 단순한 개인의 학비 절감에서 그치지 않는다. 중개인들은 “UT 오스틴 인근 콘도 시장에서 이런 식으로 매물 거래되는 비중이 상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를 들어 웨스트 캠퍼스의 한 3층 건물에는 현재도 뉴저지, 메릴랜드, 캘리포니아, 뉴욕, 테네시 출신 학생들이 콘도를 소유하고 있다. 이는 수요가 곧 시장을 만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개인 마무헤와는 “이 제도가 사라지면 웨스트 캠퍼스 일대 콘도 가격은 급락할 수 있다. 지금은 이게 부동산 시장의 큰 축”이라고 말했다.
텍사스 북부 지역인 하이드파크에서도 최근 1970년대 아파트를 콘도로 리모델링해 매물로 내놓으면서 “UT 등록금 절감 가능”을 홍보 문구로 내세웠다.
텍사스 고등교육조정위원회는 2000년대 중반 해당 제도가 부유층에게만 유리하다는 우려를 인지하고 ‘임대주택’으로도 주민 등록금을 받을 수 있도록 검토했지만, 결국 채택되지 않았다.
최근 주 정부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2024년 6월, 텍사스는 연방법원과 합의해 불법체류 신분의 학생들에게 적용되던 주민 등록금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텍사스 법무장관 켄 팩스턴은 “불법 체류자에게 주는 혜택이 미국 시민보다 많아선 안 된다”며 “이 조치는 미국적이지 않은 제도의 종결”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운동단체 텍사스 라이징(Texas Rising)의 오펠리아 알론소는 “수십 년간 세금을 내고 살아온 가족의 자녀는 혜택을 잃었고, 캘리포니아 출신 부자는 수표 한 장으로 등록금을 줄이고 있다”며 “무엇이 진정한 ‘텍사스 주민’인가를 다시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안미향 기자 amiangs02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