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텍사스N] 오스틴 북동부에 위치한 테일러 고등학교는 26-27학년도부터 ‘한국어 1(Korean I)’ 과목을 정식 개설했다. 미국 교사자격증을 소지한 한국인 교사가 학생들에게 기본 자음과 모음부터 발음하는 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 테일러 교육구 공교육에 첫 한국어 정규수업 …수강 신청 학생도 늘어
- ‘안녕하세요’부터 시작한 꿈…테일러고 한국어 정규수업 첫발
[테일러=텍사스N] “아버지가 삼성 테일러에서 근무해요, 저도 반도체를 공부해 삼성에 취업하고 싶어요. 그때 한국인 동료들과 한국어로 대화하고 싶어요.” , “언젠가는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한국 음악과 드라마가 너무 좋아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들어선 텍사스 오스틴 북동부에 위치한 테일러 고등학교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의 꿈은 한국과 연결된다.
중부 텍사스에서는 처음으로 정규 외국어 과목으로 채택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지역 산업구조의 변화가 학생들의 과목 선택과 진로 구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테일러독립교육구(Taylor ISD)는 2026∼2027학년도부터 테일러고등학교에 ‘한국어 1(Korean I)’ 과목을 정식 개설했다. 방과 후 문화강좌가 아니라 졸업에 필요한 외국어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정규 수업이다.
지난 8월 12일 새 학년이 시작된 가운데 현재 12명이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학생들은 한글의 기본 자음과 모음부터 배우며 한국어 학습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당초 수강 신청은 한국어 과목의 정식 개설이 확정되기 전에 대부분 마무리됐다. 그러나 개학 후 시간표 변경 기간에 한국어 수업 개설을 알게 된 학생들이 과목 변경을 요청하면서 수강 희망자가 늘고 있다.
학생 수요 확인되자 예상보다 빠르게 정규 편성
테일러 교육구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의 관심과 수요가 충분할 경우 한국어를 정규과목으로 개설한다는 방침이었다. 실제 채택 여부는 수강 희망자 규모에 달려 있었다.
제니퍼 패츠키(Jennifer Patschke) 테일러 교육구 인사·학생지원 총괄 책임자는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봄 학기 중 다음 학년 과목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한국어 1을 선택지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패츠키 책임자는 “학생들은 봄 학기 중반에 다음 학년도 수강 과목을 선택한다”며 “당시 선택표에 한국어 1을 수강할 기회를 넣었고, 학생들의 관심이 실제 정규과목 개설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텍사스 공립고등학교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졸업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동일한 외국어 과정을 연속해 이수해야 한다. 이미 다른 외국어 과정을 시작한 학생은 해당 언어의 1·2단계를 먼저 이수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 현재 한국어 수강생은 신입생이 대부분이다.
한국어 과목 개설이 확정된 시점이 기존 수강 신청 이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음 학년도부터 과목 선택 단계에서 한국어가 정식으로 안내될 경우 수강생은 더 늘어날 것으로 교육구는 기대하고 있다.
“학생들 관심과 열의에 교사인 나도 감동”
첫 정규 한국어 수업은 정재린 교사가 맡았다. 정 교사는 “학생들이 한국어에 관심이 많고 수업도 매우 잘 따라오고 있다”며 “교사인 저까지 감동을 받을 정도다. 한국의 위상이 정말 많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업 시작 닷새 만에 학생들은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같은 기본 인사말을 익혔다. 아직 한글 쓰기가 서툴지만 직접 글자를 적고 읽으려는 참여 열기도 높다고 정 교사는 전했다. 정 교사는 수업 초반 학생들을 팀으로 나눠 작은 보드에 한국어 답을 적는 ‘골든벨’ 방식의 게임을 진행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잘 쓰지 못하더라도 한국어로 직접 적어보라고 했는데 무척 재미있어했다”며 “앞으로도 한국과 관련된 게임과 활동을 활용해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수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K팝·드라마에서 삼성 취업까지…수강 이유도 다양
학생들이 한국어를 선택한 배경에는 K팝과 한국 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이 크다. 정 교사는 “K팝과 K드라마가 널리 알려지면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테일러에서는 삼성 공장이 바로 옆에 있다 보니 앞으로 삼성에서 일하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테일러고에서 기존에 선택할 수 있었던 외국어 과정은 스페인어와 미국수어(ASL)가 중심이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기존 수업 대신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생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강생들은 모두 한국 문화에 관심을 보였지만 한국어를 선택한 이유는 대중문화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역의 산업 변화와 취업 가능성을 고려해 수업을 선택한 학생도 있었다.
올해 9학년인 비숍 데니얼 군은 아버지가 테일러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자신도 장래에 삼성에서 반도체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데니얼 군은 한국 기업에 취업한 뒤 한국인 동료들과 한국어로 직접 대화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를 위해 고등학교에서부터 한국어를 배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테일러고를 나서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바로 맞은편에 보인다. 학생들에게 삼성은 뉴스나 교과서에서 접하는 해외 기업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일하고 자신도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일터가 되고 있다.
패츠키 책임자는 “학생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한국을 잘 인식하고 있다”며 “삼성의 지역 진출과 그곳에서 근무하는 학부모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어 “학교를 나오면 삼성 공장이 바로 보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기회를 매우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놀이와 대화, 글쓰기 결합…“한국어에 자신감 갖게 하고 싶어”
정 교사는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부담 없이 한국어를 말하고 쓸 수 있도록 놀이와 대화, 글쓰기 활동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재미있으면서도 교육적인 활동을 많이 하려고 한다”며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한국어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교실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정규 학점 과목인 만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 평가도 이뤄진다. 기초 단계에서는 한글을 반복해서 직접 써보는 연습과 글쓰기 과제를 비중 있게 다룰 예정이다. 정 교사는 “한글은 직접 많이 써볼수록 실력이 늘기 때문에 쓰기 연습을 많이 할 계획”이라며 “교실에 들어올 때 글자를 보여주고 어떻게 읽는지 묻는 간단한 퀴즈도 진행하면서 반복적으로 연습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한국어 문장을 소리 내 말하는 연습도 병행하도록 지도할 예정이다. 문자 습득에 그치지 않고 실제 의사소통 능력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다.
한국 학생들과의 교류가 관심 높여
올해 초 테일러 교육구를 방문한 한국 고등학생들과의 교류도 한국어 과목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한국 대영고등학교 학생들은 지난 1월 테일러 교육구를 방문해 테일러고 학생들과 함께 수업에 참여하고 학교 시설을 둘러봤다. 양국 학생들은 대화를 나누고 선물을 교환하며 서로의 학교생활과 문화를 경험했다.
패츠키 책임자는 “한국 학생들이 학교를 방문해 우리 학생들과 활발하게 교류한 것이 한국어 수업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였다”며 “한국어를 실제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고 많은 기대감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개학 후에도 한국어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대기하고 있다”며 “학생들은 새로운 학습 여정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테일러 교육구는 라운드락 교육구와 함께 오스틴 광역권 공립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정규 외국어 과목으로 제공하는 소수 교육구 가운데 하나다. 패츠키 책임자는 테일러고 수업이 텍사스 교사 자격을 갖춘 한국어 교사에 의해 진행되며, 학생들이 졸업에 필요한 정식 외국어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라운드락 교육구는 한국어 능력시험을 통해 외국어 학점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한국어 교사가 매일 교실에서 수업하는 정규과정은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테일러고의 한국어 1은 자격을 갖춘 교사가 정규 시간표에 따라 수업하고 졸업 학점을 부여하는 오스틴 광역권 공립학교의 첫 사례로 파악된다.
한국어 2∼4 확대 기대 … 한국 현장학습도 구상
테일러 교육구는 한국어 1 수강생들이 다음 단계인 한국어 2로 진급하고, 신규 학생들이 한국어 1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과정을 지속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어 2 역시 텍사스주가 승인한 외국어 과정이다. 학생 수요가 이어질 경우 한국어 3과 한국어 4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패츠키 책임자는 “학생들이 수업을 좋아하고 계속 선택하기를 기대한다”며 “현재 한국어 1을 듣는 학생들이 한국어 2로 진급하고, 한국어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학생은 한국어 3과 4까지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고급 단계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있다는 것은 우리 교육구에 큰 행운”이라며 “더 큰 꿈을 꾼다면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해 자신들이 배운 언어와 문화를 현장에서 경험하도록 하는 교육여행도 추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테일러고의 한국어 정규과목 개설은 한국과의 교육·문화 교류가 실제 공교육 과정으로 이어진 사례다. 동시에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중부텍사스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지역 학생들의 언어 선택과 미래 직업관까지 바꾸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어진흥재단 “3년 노력의 결실”
한국어진흥재단의 길옥빈 변호사는 테일러 고등학교 한국어 수업 정규개설에 대해 “매우 특별하고 감격스럽다”면서 “테일러 고등학교(Taylor High School)에 한국어 프로그램을 개설하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헌신과 노력을 기울인 끝에, 드디어 첫 번째한국어 레벨 1 수업이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테일러 교육구(Taylor ISD) 지도부의 아낌없는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앞으로 이 프로그램이 테일러 교육구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나아가 인근 교육구까지 확대되기를 희망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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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향 기자 amiangs02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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